[윤여일]바다의 값은 얼마이며, 바다의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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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7-10 17:58 조회3,01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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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바닷가 마을인 줄 알았던 제주 구좌읍 월정리가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제주도와 월정리마을회가 ‘갈등 종결’ 대타협을 통해 6년째 멈춰섰던 증설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월정리 문제는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지금의 월정리는 제주의 어떤 역사적 장면이고 사회적 단면인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떠한 과제가 남아있는가. 월정리의 지난 시간이 제주도의 미래에 건네는 물음은 무엇인가. 현장을 지켜봤던 실천적 학자가 보내온 글을 7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글]
<글 쓰는 순서>
① 월정리 문제는 왜 복잡한가?
② 월정리 싸움은 님비인가?
③ 유네스코 등재는 월정리에 무슨 의미였나?
④ 지하의 동굴은 어떻게 지상의 정치를 일으켰나?
⑤ 바다의 값은 얼마이며 바다의 주인은 누구인가?
⑥ 해녀들은 어떻게 운동의 주역이 되었는가?
⑦ 월정리발 분산화론은 제주도의 미래에 무엇을 말하는가?
개발과 보상
보상과 바다. 이것이 월정리 문제가 제주사회에 건네는 또 하나의 논제이다. 바다(혹은 바다와의 관계)가 훼손되어 보상을 한다면 그 값은 어떻게 매겨져야 하는가. 바다는 소유자가 따로 없는데 누구에게 보상해야 하는가. 이 물음은 30여 년 전 탑동매립 반대운동 이후로 이곳저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하지만 끊임없이 출몰하고 있다.
먼저 개발과 보상부터 생각해보자. 제주도에서 농지, 목장, 산림 등을 입지로 삼아 대규모 개발, 특히 공공사업을 진행하려다가 갈등이 생기면, 그 갈등은 종국에는 해당 지역의 공동체에 대한 보상의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해상풍력발전이나 태양광 건설 같은 공공사업은 어장, 목장, 초지 등의 지역적 커먼즈를 변형시키며 그 댓가로 보상을 하는 것이 관행이며, 동물테마파크나 리조트 등이 들어서려는 환경 갈등 지역들은 보상을 두고 주민과 사업자 간, 그리고 주민들 간의 충돌을 겪었다.
염미경의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관련 시설 수용의 사례에서는 적절한 보상의 기준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사업자의 대응 방식은 주민들의 반대 강도에 따라 달라지며, 이로 인해 보상에 대한 기대 심리로 주민들은 일단 강하게 반대하고 보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해당 사업을 막겠다는 입장이 아니지만 보상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반대운동을 펼치거나, 원래는 막아설 작정이었더라도 역부족이면 보상 받는 쪽으로 돌아서게 된다는 것이다.(염미경,「풍력발전시설 입지문제의 지역 쟁점화 양상과 시사점」,『지역사회학』 11(2), 2010.)
그 경우 마을 내에서 반대운동을 함께 해오던 구성원들 사이에서 입장 선회에 대한 공동의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채 마을 임원이 사업자와 협상을 하면, 이제 사업자와 주민들 간 갈등이 주민과 주민 간의 불란으로 옮겨간다. 반대운동을 해오던 주민들이 ‘졌다’가 아니라 ‘망했다’라고 여기는 상황은 그런 때일 것이다.
월정리에서 건물 보상의 역사
바닷가에 동부하수처리장이 들어선 월정리에서 보상의 문제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
그 전에 과거에는 보상이 어떻게 진행되었던가. 월정리에서 하수처리장 건설에 따른 최초의 보상은 1997년 신설 이후였다. 건물 보상 방식으로 제주도정이 어촌계 건물과 어촌계 식당을 지어주었다. 이는 하수처리장 가동으로 바다의 오염과 어업상의 손실이 예상되고, 어업인을 가장 중요한 당사자로 인정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후 어업상의 피해는 건물 보상 수준을 한참 뛰어넘었을 것이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자 어촌계 식당은 관리가 번거로워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2014년 1차 증설을 거쳐, 2017년 2차 증설 계획이 나오자 월정리 주민들이 반대했으며, 제주도정은 2018~2019년도에 다시 건물 보상 방식으로 초등학교 체육관, 게이트볼장 등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게이트볼장은 가보았더니 사용되지 않는 채 방치되어 있었다. 더욱이 보상을 위해 제주도정이 지어준 건물들은 이후 어촌계나 마을회가 유지관리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김은아 전 비대위 공동위원장은 용천동굴의 유네스코 등재로 제주도 차원에서는 관광 브랜드를 얻었지만, 정작 월정리 주민들이 용천동굴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방안은 없으며, 토지 사용 규제와 바다 오염으로 과거의 건물 보상방식에 대해 주민들은 억울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제 곧 2차 증설을 두고서도 보상 논의가 본격화될 텐데, 그러면 새로운 건물 혹은 토지 보상이나 과거 보상 건물들의 리모델링 등이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 행정 측이 건물 보상을 선호하는 까닭은 현금 보상의 경우 기준 책정도 어렵고, 재원 소요도 크고, 이후 유사 사업을 진행할 때 형평성의 논란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 보상은 현금 보상과 달리 분배에 따른 주민 간 갈등 소지가 적고, 마을 내 공동의 자산이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역시 편의적이다. 월정리의 경우 하수처리장 증설로 생업에 지장을 받을 해녀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상 방식, 그리고 그간 긴 싸움을 거치며 갈등도 컸던 월정리 주민들의 공동체성에 보탬이 되는 보상 방식을 다각도로 궁리해야 할 것이다.
바다를 소유한다는 심상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보상의 방식과 규모가 적정한가 아니라 보상 자체가 유발하는 바다에 대한 소유의 감각에 관한 것이다. 바다는 땅과 다르다. 바다는 이어져 있고 유동한다. 그래서 공공사업이 바다에 악영향을 미쳐 보상을 할 때는 누구에게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늘 따라다닌다. 어업 피해 정도에 따라 어업인에게 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 바다를 앞에 두고 있는 마을 주민 전체에게 해야 하는가. 그런데 옆 마을은 또 어찌할 것인가.
보통은 어업인을 중심으로 해당 마을에 보상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적절해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적절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앞바다는 ‘그들의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바다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점용할 뿐이다. 그런데 마을 앞바다는 어떻게 해당 어촌계나 마을의 것, 소유하기 때문에 따라서 처분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을까.
장훈교는 탑동매립 반대운동을 연구하며 마을 앞바다에 대한 (근대적) 소유의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탐구한 바 있다. (장훈교,「제주 탑동 공유수면 매립 반대 운동」,『탐라문화』60, 2019.)
앞바다 그리고 공동어장은 애초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영역이다. 옛 로마법은 공동체 전체에게 귀속되어 있는 자원들은 ‘레스 우니베르시타티스’(Res universitatis)로 분류해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정했다.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도 앞바다는 마을 소유가 아니었으며, 오늘날에도 법률적으로는 그러하다. 하지만 앞바다는 마을의 것이라는 심상은 분명히 존재하며, 보상 과정에서는 그 심상이 현실화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장훈교가 보기에 그 소유의 심상이 생겨난 역사적 계기는 어업권의 총유화였다. 해녀의 물질은 법적으로 ‘나잠어업’으로 분류되어 산소를 인위적으로 공급받는 ‘잠수기어업’과 구분된다. 나잠어업을 하는 곳이 ‘나잠어장’으로 제1종 공동어장에 해당한다. 제1종 공동어장은 일반적으로 마을 단위로 나뉘어진다.
1975년 정부는 수산업법 개정을 통해 제1종 공동어장의 어업권을 어촌계의 ‘총유’로 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연안 어장의 황폐화로 인한 어촌계 부실화를 막기 위해 어촌계에 지속가능한 어장 관리의 책임을 이끌어내고자 소유의 감각을 부과한 것이다. 이어서 1981년부터 어촌계가 공동어장의 어업면허를 배타적으로 갖게 되었다. 이로써 확보한 것은 소유권이 아니라 이용권이었지만, 어촌계에는 공동어장이 자리한 마을 앞바다를 자신의 소유로 바라보는 심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어업권자인 어촌계는 해당 구역 행정의 장으로부터 ‘어업면허증’과 어업자원보호법에 따른 허가증을 받아 공동어장을 자율적으로 관리한다. 어촌계는 어장의 경계, 해산물 채취의 자격, 해산물 채취의 종류와 방법, 어장 관리 등을 규정한다. 최현에 따르면 앞바다로 떠밀려온 시체의 처리도 어촌계가 담당하며, 이는 자신들이 관리하는 바다임을 주창하는 상징적인 행위이다.(최현,「공동자원의 새로운 정의와 제주의 공동자원: 바다밭을 중심으로」,『ECO』 23(1), 2019.)
보상과 바다
월정리 바다 쪽에서 본 동부하수처리장 / 출처=엄문희 제공
바다에 대한 소유의 감각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바로 보상이다. 해안 개발이나 매립 등의 공공사업을 진행하며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그 연안 공동체에 어업 피해를 물질적인 방식으로 보상하는 접근 방식은, 보상을 받는 연안 공동체로 하여금 앞바다를 거래가능한 자신들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심리를 유발한다. 그리하여 보상을 목적으로 해상풍력발전 단지 같은 연안 개발을 유치하는 연안 공동체나 어촌계가 나타났다. 해양 개발에 대한 보상의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연안 공동체가 앞바다를 점용하는 권리를, 소유하는 권리로 바라보는 심상이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바다에 대한 소유의 감각을 확산시킨 ‘보상’이라는 계기는 주민들이 앞바다와 맺는 관계에서 ‘어업권의 총유화’라는 계기와는 다른 방향으로 작용한다. 어업권의 총유화가 앞바다를 해당 어촌계의 것처럼 여기게끔 하여 지속가능하게 관리하도록 유도했다면, 보상은 앞바다가 자신들의 것이니 그 처분도 옆마을이나 시민사회의 다른 행위자가 관여할 수 없는 자신들의 권리라는 인식을 공고화했다.
월정리 앞바다 / 출처=엄문희 제공
커먼즈의 경계가 지니는 양면성
이는 커먼즈의 경계가 지니는 양면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목장과 어장 같은 지역적 커먼즈는 경계를 갖는다.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관리에 기여한 내부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이 무임승차해서는 안 된다. 커먼즈의 경계로 인해 목장조합원이나 어촌계원 같은 이용자 집단은 소속감과 유대감을 갖고 그 커먼즈를 지속가능하게 보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커먼즈의 경계와 이용자 집단의 장소 기반 소속감과 유대감은 커먼즈의 처분을 둘러싼 갈등 상황에서 다른 행위자의 개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가령 연안에서 해상풍력발전소 같은 시설이 건설될 때 어촌계가 해당 사업에 동의를 하면 마치 소유권자가 자신의 자산을 처분한 것처럼 간주되어, 바다를 통해 이어져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나 환경단체가 개입하기가 어려워진다.
월정리에서는 심지어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해녀들이 끈질기게 반대하는데도 마을회와 함께 어촌계가 하수처리장의 증설을 더 이상 막지 않는 대신 보상을 받는 방향으로 돌아서자 해녀들은 마을 내에서 고립되고 해녀들과 연대하는 시민사회단체도 개입하기가 어려워졌다.
강정의 경험이 알려주는 것
여기서 강정의 경험을 돌이켜보자. 해군은 강정마을의 공유수면에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하면서 어촌계와 해녀회에 먼저 접근해 보상금을 약속하고 이들로부터 해군기지 건설사업 동의를 이끌어냈다. 2007년 4월, 당시 마을회장과 어촌계가 해군기지 유치 찬성을 결정하는 임시총회를 열었는데, 총회 참석 인원 87명 중 50여 명이 해녀들이었다. 이후 6월, 마을 차원에서 400여 명이 참여한 해군기지 유치 찬반 투표 날에는 찬성 측의 투표 반대 행위와 해녀들의 투표함 탈취 사건이 벌어졌다. 그로써 어촌계와 해녀회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 마을의 주민들과 심각하게 대립하고 제주시민사회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이후 강정 마을은 어떻게 되었던가. 보상을 받고 앞바다를 넘긴 일은 마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해군기지반대운동의 상징이 된 구럼비 바위. 길이 1.2Km, 너비 250m에 이르는 거대한 너럭바위라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구럼비 바위는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동네마당으로서, 사랑방으로서, 놀이터로서, 쉼터로서, 성소로서, 그렇게 문화를 빚어낸 공간이었다. 그렇게 다기능을 가진 커먼즈였다.
구럼비의 상실은 여러 기능을 가진 독특한 너럭바위를 잃은 것에 그치지 않고, 구럼비가 뭉개지고 그 위로 해군기지가 들어서며 주민들은 마을의 앞바다를 잃게 되었다. 제주의 어촌 마을에는 ‘우리 바당’이란 말이 있는데, 바다생물 채취로 생계를 도모하기 위한 어업권의 의미만 담겨 있는 표현은 아니다. 앞바다는 삶터이자 쉼터, 놀이터이며, 의례의 장이자 기억의 공간이다.
‘우리’, 즉 마을은 앞바다와 함께 형성되고 지속되어왔다. 따라서 ‘우리 바당’을 잃는다면 마을의 일부 공간에 대한 접근권을 상실할 뿐 아니라 마을 자체가 변형된다. 커먼즈를 상실하면 커뮤니티가 무너진다. 그 심각한 폐해는 해군기지 착공 이래 마을의 해체 현상과 주민 갈등의 고조로 드러났다. 바당이라는 자연과의 관계가 절연되자 인간 간의 관계가 변질된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공공사업이나 사적 개발로 커먼즈가 파괴된 제주도의 여러 마을이 거쳐 간 공통의 운명이다.
누가 진정한 우리인가
‘우리 바당’은 해녀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 말은 ‘우리가 소유한 바다’라는 뉘앙스와는 크게 다르다. 바다를 소유한다니, 해녀들에게는 너무 주제넘은 생각일 것이다.
해녀들은 음력 2월에 ‘영등굿’을 지낸다. ‘영등’은 바람과 바다의 여신의 이름으로, 2월 초하룻날 제주도에 와서 바닷가를 돌면서 채취물의 씨를 뿌려 풍요를 준다고 알려져 있다. 민윤숙은 영등굿에서 좁쌀 등을 바다에 뿌리는 ‘씨드림’은 바다와의 호혜적 관계 맺기를 기도하는 생태학적 차원을 지닌다고 짚었다. (민윤숙, 「제주 잠수 물질의 생태학적 측면-자원의 한계를 고려한 ‘물질’ 민속을 중심으로-」, 『한국민속학』 52, 2010.)
해녀들은 바닷속을 ‘용왕할망’의 세계로 여기며 굿을 통해 자신들이 영등 여신의 자손이라는 신화적 관계를 형성해 정체성을 확인한다. 또한 굿을 통해 앞바다 자원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공동규범을 만들어 앞바다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관리한다. 금어기를 정해 이 기간에는 물질을 하지 않고, 일정 크기 이상 자라지 않은 해산물은 채취하지 않고, 특정 기술과 도구의 사용을 금지해 남획을 방지하고, 해안가와 조간대에서 함께 잡초를 제거한다.
해녀들의 ‘우리 바당’. 여기서 ‘우리’와 ‘바당’ 사이에 있는 것은 소유격이 아니다. 바당이 우리를 살리며, 우리는 바당을 지킨다는 호혜적 관계성이다. 그런 바당은 소유하는 것도, 더구나 처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당을 잃으면 자신을 잃는다.
우리 바다. 자 그렇다면, 여기에 두 가지 ‘우리’가 있다. 첫 번째 우리는 바다가 자신들의 소유물이라서 바다의 처분도 자신들이 정할 수 있다는 우리이다. 두 번째 우리는 바다는 자신들의 삶터여서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우리이다. 어떤 우리가 바다에게 보다 참된 우리인가.
이미 솔로몬의 재판이 말해주지 않았던가. 아픈 자가 진짜 어머니라고.
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교수
제주의 소리 2023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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