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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천하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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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9-06 15:28 조회2,7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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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은 ‘호질(虎叱)’이란 글에서 호랑이는 슬기롭고 성스러우며, 문무를 겸하고, 자애롭고 효성이 지극하며, 지혜롭고 어질면서도 용맹해 천하무적이라고 했다. 호랑이가 그저 사납고 힘만 좋아서가 아니라 짐승이지만 인덕을 가졌기에 감히 대적한 상대가 없다고 보았다. 글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과부와 놀아나다 도망친 선비의 비굴함과 이중인격에 구역질 난다며 잡아먹지 않고 호통을 치고 가버린다. 호질이란 호랑이의 권력을 가진 자와 출세를 따르는 소위 지식인의 허위와 가식에 대한 꾸짖음이다.


세상에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것에 대해 천하무적이라고 한다. 과거 스페인함대를 무적함대라고 불렀고, 러시아의 격투기선수 표도르를 60억분의 1의 사나이라며 당시 천하무적이라고 했다. 이젠 전쟁이나 싸움뿐만 아니라 대결이나 경쟁 속에서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나 집단, 사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는 한자 성어다.

천하무적의 본래 의미는 맹자의 이루(離婁) 편 상(上)의 ‘소국사대국장(小國師大國章)’에서 나왔다. 맹자는 공자의 말을 인용해 “임금이 어질면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다(夫國君好仁 天下無敵)”고 설파했다. 맹자 양혜왕편에 나오는 인자무적(仁者無敵)과 같은 맥락이다. 처음엔 착한 어진 군주에게는 적이 없다는 의미였던 것이, 시간이 흐르며 힘으로는 대적할 자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의미로 변질돼 쓰이게 됐다.

맹자는 세상에 도(道)가 있으면, 덕(德)과 어짊이 작은 사람은 큰 사람을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세상에 도리와 이치가 없으면 작고 약한 나라는 크고 강한 나라의 부림을 받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임금이 어진 정치를 하지 않고, 나라가 올바른 길로 가지 않으면 현명한 인재들 대신 권력에 기생해 자리에 연연하는 간신들의 잘못마저 두둔해 중용하고, 힘없는 나라는 힘센 나라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얼마 전 한·미·일 세 정상은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결과를 담은 세 문서를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캠프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며 “우리 국민에게 위험은 확실하게 줄어들고 기회는 확실하게 커질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리고 “3국 협력을 통해 우리가 강해지면 외부의 공격 리스크가 줄어드는데, 어떻게 안보가 위험해진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유일하고 영원한 천하무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군사력만큼은 천하무적인 미국과 세계 6위의 군사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에 굴하지 않고 핵무력을 개발한 북이다. 과연 일본과 군사협력이든 군사동맹이든 맺는다고 북이 핵을 포기할까? 그럴 일은 없다. 오히려 핵을 더 움켜쥐고 군사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협력 확대도 이젠 예정된 순서로 보인다.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준동맹이 가시화되면서 동북아시아에 신냉전 기류와 진영 대립의 조짐이 거세어지고 있다. 전선이 확대되면서 없던 적까지 만들어냈다.

과연 대통령의 말처럼 국민의 안보 우려가 줄어들고 한반도에 평화가 증진될지는 의문이다. 캠프데이비드의 정상회담 결과가 진정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번영에 기여할지는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 미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지만 분단이란 현실 속에 호기롭게 최전선에 나서 힘 좋은 나라들 대신 피를 흘려주겠다고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진정한 인간 세상의 천하무적은 밖으로 보이는 힘이 아니라 안에서의 바름이고 어짊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군사안보 교수 


국민일보 2023년 8월 28일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318081&code=1117139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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