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갑우] 현재적 과거읽기, 과거적 현재읽기 > 회원칼럼·언론보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회원칼럼·언론보도

[구갑우] 현재적 과거읽기, 과거적 현재읽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4-09 13:28 조회28,716회 댓글0건

본문


#1. 1637년 정축년 설날 아침, “임금은 멍석 한가운데로 나아”가 춤을 추었다. 피란처인 남한산성을 청나라 군대가 포위한 상황에서 “조선의 국왕이 북경을 향하여 명의 천자에게 올리는 망궐례(望闕禮)”였다. 청의 황제가 이 광경을 보고 부하에게, “저것이 무엇이냐”, 묻는다. 황제는 “명에게”, “북경 쪽으로”를 되뇐다. 포를 쏘아 제압할 것을 제안하자, 황제는 “저들을 살려서 대면하려 한다”, “발포를 금한다”고 명령한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한 장면이다. 김훈은 책의 첫머리에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적고 있다. <남한산성>이 역사가 아니라 저자가 재구성한 허구란 의미의 강조다. 그러나 소설로만 읽을 때도 독자는 소설이란 담론의 현실구성 능력을 생각하게 된다.

역사소설은 독자에게 현재적 과거읽기를 하게 한다. 정축년 음력 1월30일 조선의 임금은 남한산성을 내려와 한강변 나루터인 삼전도에서 청의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의 예를 하게 된다. 명의 쇠퇴와 청의 부상 시기에 청은 조선과 명의 연합을 저지하고자 했고, 결국 군사적 개입을 통해 조선의 굴복을 얻어냈다. 창경궁으로 귀환한 조선의 임금 인조는 명의 연호를 폐지하고 청의 연호를 쓰기 시작했다. <남한산성>의 저 춤추는 장면은, “세모에 영신의 예를 갖춤은 적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고 “동방의 예법을 보여서 저들이 이웃임을 스스로 알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명에 대한 의리와 명분을 지키려는 신성화된 사대의 관성으로 읽힌다.

#2. 1880년 6월 예조참의 김홍집은 수행원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개항과 같은 한·일관계의 쟁점을 둘러싼 타협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일본 주재 청국공사관의 황준센(黃遵憲)에게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조일문 역주)이란 책을 받아 조정에 올리게 된다.

이 책이 조선에 준 국제관계 비책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친(親)중국 하고 결(結)일본 하며, 연(聯)미국 하라는 것이었다. 이 외교노선은 황준센 개인의 의견처럼 포장했지만, 청나라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 사의조선책략>의 노선에 대한 반발이 1881년 영남의 유생 1만여명이 김홍집의 탄핵을 요구하며 연명한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였다. 유생들에게 친중국은 불변의 노선이었다.

“대저 중국이란 우리가 신하로서 섬기는 바이오며… 그러하온데 이제 무엇을 더 친할 것이 있겠나이까”라고 말한다. “일본이란 우리에게 매어 있던 나라”고, “미국이란 우리가 본래 모르던 나라”며,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는 혐의(嫌疑)가 없는 나라”로 ‘영남만인소’는 정리한다. “러시아·미국·일본은 같은 오랑캐”이고, “겹겹이 막힌 국경을 넘고 만리바다를 건너서 순치의 외교를 맺었다는 일은 들어보지 못하였”다는 주장은 ‘영남만인소’의 절정이다. 비장함과 절실함이 깃들어 있는 ‘영남만인소’에서 다시금 명이든 청이든 중국에 대한 신성화된 사대의 관성을 읽는다.
(후략)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5년 4월 5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4052103415&code=9903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Segyo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EL. 02-3143-2902 FAX. 02-3143-2903 E-Mail. segyo@segyo.org
04004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로12길 7 (서교동 475-34) 창비서교빌딩 2층 (사)세교연구소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