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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액자 - 프레임 전쟁과 노예의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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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5-04 11:41 조회29,5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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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다 지쳐 멍하니 창밖을 쳐다볼 오후 4시 즈음이면 휴대폰으로 한 무더기 꽃이 전송된다. 아버지의 사진이다. 멀리 하늘과 고층 건물들을 배경으로 한 한강의 전경이, 자전거 타는 아이들의 풍경이, 종종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는 새와 호수와 솔숲 풍경이 전송되기도 한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라 찍은 사진을 모두 현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사진을 찍게 되면 아버지는 아이처럼 신나서 집 벽 여기저기 사진을 액자에 넣어 걸어 놓으신다.

아버지의 액자 선택은 신중하다. 풍경의 종류에 따라, 초점의 대상 크기에 따라 액자의 재질·색깔·크기·디자인을 다르게 고르신다. 사진을 찍을 때보다 액자를 고르는 데 더 오랜 시간을 들이시기도 한다. 풍경이 어떤 액자 속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경험상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진에서 액자 선택은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풍경의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최대한 `나타나게` 하는 사진의 일부이자 화룡점정의 과정이다. 여기에서 액자라는 `형식`은 이미지의 `내용`을 보강하고 수정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상 전체를 직관적으로 규정하는 역할을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정말로 철저하게 `실사구시(實事求是)`하는 이들은 내용을 담는 `형식`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형식이 내용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본질은 액자처럼 사물을 두른 형식(form)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고 보았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5년 5월 1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418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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