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엽] ‘잔혹 동시’와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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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5-26 16:58 조회29,5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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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초등학생이 쓴 이른바 ‘잔혹 동시’, 그중에서도 특히 ‘학원가기 싫은 날’이 논란거리였다. 조숙한 시인의 수사적 과장법에 대해 우리 사회는 유감스럽게도 시집 폐기라는 현실적 과장법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내 보기에 이 시에서 흥미로운 점은 수사적 층위보다 거기에 표현된 어머니에 대한 변화된 경험과 감정이다. 이 시는 계급적·문화적 승계를 위해 자식을 엄격하게 훈육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에게 공격성을 키워가는 딸이라는 새로운 모녀관계를 반영한다. 승계, 훈육 그리고 그것에 대한 원한 감정을 경유한 승계는 전형적으로 부자관계의 드라마였다. ‘학원가기 싫은 날’은 모녀관계도 그런 드라마에 물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모녀관계의 변화는 영화 <차이나타운>에서도 드러난다. 내 보기에 <차이나타운>은 ‘잔혹 동시’의 거울상, 즉 어머니 편에서 쓰인 ‘잔혹 동시’라 할 만하다. 물론 <차이나타운>은 동시보다 훨씬 긴 서사를 펼치는 만큼 ‘잔혹 동시’에 드러난 모티브가 어디에 이를 수 있는지 더 깊게 다룬다. 그러니 ‘잔혹 동시’에서 단초가 드러나는 모녀관계의 심리적 귀결을 <차이나타운>을 통해 살필 수 있을 것인데, 그러면서 <차이나타운>이 채택한 누아르 장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덤으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차이나타운>의 주인공 이름은 시사적이게도 ‘엄마’(김혜수 분)이다. 그녀는 낳은 딸을 버린다. 그리고 딸을 버린 곳 근방에서 자신의 친딸일지도 모를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운다. 제대로 훈육되지 않는 아이들은 다시 버린다. 그렇게 해서 그녀에게 남은 아이가 ‘일영’(김고은 분)과 일영이 ‘자매’로 고집한 ‘쏭’(이수경 분)이다.
이런 과정은 ‘엄마’가 출산과 입양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이 점에서 <차이나타운>은 남성 누아르와 다르다. 남성 누아르에서 아버지는 의부(義父)이고 그런 뜻에서 부자관계는 ‘입양’관계라 할 수 있다. 그것의 심리적 진실은, 부자관계는 출산에 대한 의심을 극복하는 승인 또는 입양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산이 아니라 입양이기 때문에 부자관계에는 승계와 훈육의 엄격함 그리고 부친 살해의 모티브가 어렵지 않게 스며든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르다. 출산은 자명하고 자연적 유대 또한 끈끈하다. 하지만 사회가 승계와 훈육의 부담을 어머니에게 강요하면, 그래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리해 아들을 훈육하는 것을 넘어서 딸 또한 사회의 압력을 따라 훈육하길 자임한다면, 어머니의 운명은 이오카스테(오이디푸스 어머니)가 아니라 라이오스(오이디푸스 아버지)에 접근한다. 하지만 어머니가 겪는 심리적 곤경은 라이오스에 비할 바가 아니다. 출산에 대한 불신을 떨치고 입양을 자임하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출산의 부인에 기초한 입양이라는 시련을 겪기 때문이다. 남성 누아르에서 의부에게 드리운 멜랑콜리보다 <차이나타운>의 ‘엄마’에게 드리운 멜랑콜리가 한결 깊은 것은 그 때문이다.
(후략)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5년 5월 20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920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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