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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우] 1955년 반둥회의와 평화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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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8-26 10:54 조회33,9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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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반둥을 떠올렸다. 개인적 동기와 국제정치적 상상력의 결합이었다.

그리스인들이 동쪽의 나라를 지칭하는 단어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는 서구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이 발명한 공간이었다. 냉전 초기 아시아는 미국과 소련이 만든 양 진영의 자기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반도의 분단은 진영론이 야기한 아시아 분단의 한 구성요소였다. 그 자기장의 역학에 틈을 낸 사건이 1955년 4월의 반둥회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상상하는 실험을 할 때, 그 도시 반둥에 가고 싶었다.

국제정치를 힘의 정치로 환원하는 주류의 사고에서 주변국들은 유령이다. 주변국들의 선택은 이분법적으로 강제되곤 한다. 친미 대 친중은 강대국의 논리를 내면화한 식민적 유산의 쌍생아다. 그 이항대립은 탈식민의 과제를 연기로 만든다. 반면 반주류의 제국주의론은 주변을 국제정치의 주체로 호명했지만, 사회주의와 국제주의란 담론으로 진영 내부의 위계를 정당화하고 은폐했다. 그 위계를 탈출하려는 민족자결의 담론은 그 국가 내부의 민주주의와 경제와 인권을 희생시키는 자결의 현실을 만들곤 했다. 국제정치적 상상력의 한 원천인 반둥에도 그 모순이 있었다.

2015년 8월 한반도에서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치킨게임과 같은 군사적 충돌이 대화가 재개되면서 중단되었을 때,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를 생각했다. 남북한이 서로에 대해 무력은 물론 비방과 중상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분쟁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남북기본합의서의 약속이었다. 우연의 중첩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군사적 충돌을 불가피한 필연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평화의 시기를 우연이 필연을 대체했다고 생각하려 하는, 주류/반주류의 국제정치 담론 내부에는 남북기본합의서와 같은 약속이 있을 자리가 없다. 1955년 4월의 반둥정신은 그 같은 약속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담론적 기획이었다.

1954년 9월 미국 주도로 반공산주의 군사블록인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가 만들어졌다.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인 반둥회의는 동남아시아에서 전개되는 냉전적 긴장에 대한 대응이었다. 초청 대상에 중국이 포함되면서 대만이 빠졌다. 정전 상태의 남북한도 초청 대상이 아니었다. 한국이 반둥회의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반면, 북한은 반둥회의에 서한을 보냈다.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은 1965년 반둥회의 10주년을 기념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제국주의 국가였고 미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한 일본은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이 참여한 최초의 대규모 유색인종 국제회의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이 인도네시아와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협상을 진행하면서 소련 및 중국과 관계개선을 도모하던 시점이었다.

반둥회의가 열린 장소는 네덜란드 식민시대의 건물로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던 시기에 대동아회관으로 명명되었던 곳이다. 일본대표단의 한 관료는 1943년에 열린, 일본이 최초의 유색인종 국제회의라고 주장하는 대동아회의에서 대동아선언을 기초했던 인물이었다. 회의 과정에서 일본대표단은 침묵하던 미지의 손님이었지만, 전쟁국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외교란 미명하에 외교적 고립의 극복과 경제적 이득의 추구를 위해 아시아에 재입성하는 계기가 반둥회의였다. 미국은 중국과 인도의 중립화를 위해 일본의 회의 참가에 동의했다.
(후략)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정치학
(경향신문, 2015년 8월 23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8232153365&code=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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