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한계 > 회원칼럼·언론보도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회원칼럼·언론보도

[조효제]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한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3-09 12:30 조회28,503회 댓글0건

본문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표현의 자유는 어느 선에서 제한되어야 하는가.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위한 백신주사의 항체라는 기본을 기억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해를 끼치면서까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체제에서 100%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그 실천은 시민들의 건전한 양식으로 조절되는 게 좋다. 그래도 논란이 되는 10%는 여론과 논쟁의 용광로에서 부딪쳐야 한다. 이 논쟁의 수준이 높을수록 민주주의의 자양분이 된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샤를리 에브도 사건으로 표현의 자유가 큰 이슈로 떠올랐다. 그 후에도 한국에서 일베, 대북 삐라, 국제영화제, 대통령 비판 전단 등의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문제가 되는가. 표현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 말할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모두 연결하는 넓은 권리다. 누구라도 마음속에선 자유로울 수 있다. 독재자 앞에서도 생각은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생각의 자유가 사회공동체 내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이 말이나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들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 표현의 자유이다. 이처럼 중요한 표현의 자유를 인권의 관점에서 정리해 보자.


표현의 자유가 늘 논란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인권 중에서도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는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형식적·절차적 차원과 내용에 대한 평가의 차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구분된다. 고전적인 표현의 자유에서는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어떤 표현의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은 얼마든지 다르게 내릴 수 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형식적 차원의 자유는 옹호하자는 것이다. 흔히 인용되는 볼테르의 말은 정확히 이 지점을 겨냥한다. 이런 특성이 표현의 자유와 여타 인권들을 가르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내용상으로나 형식상으로나 반대 논리가 일치하는 노예 문제와, 표현의 자유는 다른 구조를 지녔다.


또한 표현의 자유는 평상시에는 별로 거론되지 않다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말과 행동이 나왔을 때에 갑자기 주목받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뒤집으면, 표현의 자유는 애당초 현상유지나 사회통념에 도전하는 ‘튀는’ 언어와 행동을 보호하기 위해 생겼다는 뜻이다. 일상적이고 순응적이고 무난한 행동거지는 표현의 자유가 있든 없든 별문제 없이 넘어갈 터이니 말이다. 따라서 비판적이고 파격적이고 도발적이고 과격하다는 이유로 표현 자유를 제한하자는 주장은 모순어법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고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 보장할 수도 없다.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하면 할수록 좋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예를 들어, 고문받지 않을 권리의 경우, 고문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좋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표현 자유를 ‘허용’하자는 것이지, 모든 표현의 자유를 무조건 ‘권장’한다는 말이 아니다. 후자의 입장을 취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도 있다. 이들은 타인을 불쾌하게 할 자유, 심지어 타인으로부터 불쾌함을 당할 자유(freedom to be offended)까지 요구한다. 하지만 이런 입장이 바람직한지 혹은 가능한지를 따져 봐야 한다. 예컨대, 테러 후 복간된 샤를리 잡지의 표지에 피 흘리고 죽은 동료들을 풍자하는 그림을 실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샤를리의 기자들이라도 차마 그렇게까지는 못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갈 데까지 가는 것이 다 좋은 건 아니고,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표현의 자유가 극히 소중한 권리이긴 하나 몇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표현의 자유는 외견상 ‘보편적’ 권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특정한 맥락과 배경에 많이 의존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인들은 수백년 동안 표현의 자유를 당연시하는 독특한 전통을 발전시켰다. 짓궂고 당돌하고 신성모독적인 조롱, 즉 ‘구아유’(gouaille)를 잘 받아넘겨야 세련된 사람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자기들끼리 통하는 전통이 다른 문화권의 역사적 경험과 감성에까지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 빈부격차가 심하거나 사회통합에 문제가 있거나 차별받는 소수집단이 존재하는 곳에선 표현의 자유가 심각한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동서독 통합 후 동독인들을 촌뜨기처럼 우스개로 삼은 코미디 프로가 나오곤 했다. 이런 식의 표현 자유가 당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5년 3월 3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0583.html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Segyo Institute.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EL. 02-3143-2902 FAX. 02-3143-2903 E-Mail. segyo@segyo.org
04004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로12길 7 (서교동 475-34) 창비서교빌딩 2층 (사)세교연구소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