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갑우] 평화주도성장론이 가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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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3-16 12:55 조회29,35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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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 약칭 만철.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게 러시아가 양도한 동청철도(東淸鐵道)의 남쪽 반, 즉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의 다롄(大連)에서 지린성(吉林성) 창춘(長春) 근처 쿠안청쯔(寬城子)까지의 철도와 그에 부속된 이권을 기초로 1906년 탄생한 철도회사다. 만철의 초대 총재는 대만에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식민지배의 토대를 만든 고토 심페이(後藤新平)였다. 일본이 유라시아로 가는 관문으로 생각했던 만주에 대한 제국주의적 경영의 시작은 철도였다. 고토는 ‘문장적 무비’(文裝的武備)라는 말로 표현한 것처럼, 식민지배는 무력 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예술, 학술 같은 넓은 의미의 문사(文事)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절정에 이르렀을 때 약 2,300여명이 근무했던 만철의 ‘조사부’는 이 문사를 뒷받침하는 핵심 조직이었다.
<북방 루트 리포트: 환동해 네트워크와 대륙철도>(돌베개, 2015)를 읽으며 만철과 만철의 조사부를 생각했다. 만철 조사부의 작품을 보는 듯했다. 주 필자가 <한겨레신문> 기자분들이기에 만철 조사부에 다수의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도 했다. <북방 루트>의 질문은 “‘북방으로 가는 길’ 그 자체가 희망이 아닐까”이다. 이 질문에 대한 질문은 ‘어떤 희망’인가다. 다음은 <북방 루트>가 제시하는 하나의 답이다.
시베리아와 만주를 포괄하는 동해에서 바이칼까지는 북방 경제협력의 길이다.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도약을 바탕으로 러시아 연해주(시베리아), 중국 동북3성(만주) 등 이른바 북방 협력은 남한에게는 기존의 한·미·일 협력을 중심으로 한 성장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이 될 것이다.
진보의 금기어 가운데 하나였던 성장이 북방협력과 결합된 핵심어다. 소득주도 성장론에 버금가는 ‘평화주도 성장론’으로 부를만한 희망이다. 북한지역이 포함된 북방협력은 평화 없이 불가능하다. 평화주도 성장론은 대륙의 시야에 기초한 한반도 ‘탈분단’의 한 길로 제시되고 있다.
남북협력 또한 대륙을 시야에 넣는 북방 경제권 전략이 돼야 한다. 한반도의 ‘배꼽’인 강원도를 대륙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고 위로는 나진·선봉 지역으로 이어지는 남북협력 벨트의 동해 축을 만들어 두만강 지역의 북·중·러 협력에 적극 참여하여 일본까지 아우르는 환동해권 형성의 가능성을 내다보는 그랜드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 기획은 기능주의 또는 상업적(commercial) 자유주의라 불리는 국제관계이론을 연상시킨다.
철도를 통해 만나는 새로운 세상은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물류 중심 국가와 신인류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다. 철도로 연결되는 동북아 국제공동체는 (……) 동북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경제공동체, 평화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낙관주의에 대한 경계도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확대라는 경제협력의 논리만으로 동북아 협력의 미래를 예견하는 건 지나친 낙관주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협력이 정치군사적 협력으로 침투 확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군사적 갈등은, 경제협력을 제약한다. 경제협력 그 자체도 상호의존의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행위주체에게 상호보다는 의존이 초래할 위험을 염려하게 할 수 있다. 북방 루트도 인정하는 것처럼, “만주철도 이야기는 러시아와 중국, 일본과 한반도를 포함하는 광대한 동아시아의 정치와 경제, 국제관계와 전쟁의 파노라마로 펼쳐질 수밖에 없다.” 현재 몽골, 러시아,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주지역은 과거 지정학적 각축장이었다는 진술이다.
(후략)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5년 3월 4일)
기사 전문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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