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마이클 브라운 사건과 구조적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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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4-03 14:35 조회29,06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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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퍼거슨시 경찰을 조사한 보고서 백미는 3절 ‘세수 확보에 초점을 둔 법집행’에서 찾을 수 있다. 시가 경찰과 법원에 압력을 가하여 세금 수입을 중시하는 치안정책에 매진했다는 것이다. 시로부터 협조요청을 받은 경찰과 법원은 만만한 흑인 시민들을 쥐어짰다. 한번 걸리면 보통 3건 이상 고지서가 발부되었다
보행규칙 위반 302달러, 가두 소란 427달러, 체포 비협조 777달러, 가옥주변 잡초 제거 불량 531달러, 명령 불응 792달러, 법규준수 불이행 527달러 등, 흑인들을 시 예산 확보의 호구로 취급했다. 교통신호 위반으로 한번만 걸려도 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은 거의 파산상태에 빠질 정도로 혹독한 벌을 받았다.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셀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흑인 참정권운동의 이정표가 된 셀마 행진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그의 메시지는 미국에서 인종차별 현실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이런 해석이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생각한다. 가야 할 길이 멀 뿐만 아니라, 반세기 전에 비해 그 길이 더 복잡해지고 더 험해지고 더 교묘해졌다. 인간의 도덕성은 한길로 진보하지 않고 각 시대마다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존 그레이의 통찰이 새삼 와 닿는다.
오바마의 연설 며칠 전에 미 연방 법무부가 보고서 2편을 동시에 펴냈다. 알다시피 작년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대런 윌슨이라는 백인 경찰이 마이클 브라운이라는 18살 흑인 청소년을 사살한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첫 보고서는 이 사건을 시민권 관련 연방 형법으로 기소할 수 있느냐를 다루었다.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에서 연방법으로 기소하기 위해선 충족되어야 할 필요조건들이 있다. 잠재적 피고가 연방 범죄를 저질렀는가. 연방 범죄 목록에는 부주의과실과 과실치사가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혐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 가능한가. 즉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은가. 이런 필요조건들에 부합되지 않아 결국 사건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내용이다.
그런데 퍼거슨시 경찰을 조사한 둘째 보고서가 더욱 주목을 끈다.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인종차별 상황을 다루었던 때보다 더 신랄하게 미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공식 문헌이다. 보고서는 퍼거슨시의 경찰이 불합리한 수색·체포·압수를 금지한 연방헌법 수정조항 4조, 종교·언론·출판·집회 자유를 규정한 1조, 불합리한 강제력 사용을 금지한 4조를 위반했다고 지적한다. 윌슨의 총격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흑인들에 대한 차별에 일정한 ‘유형이나 관행’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명백한 인종적 편견이 법집행 공직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던 사실도 확인되었다. 흑인들의 인구 비율보다 처벌 비율이 월등하게 높았고, 경찰들은 근무시간에 공식메일로 ‘비인간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인종적 편견’을 거리낌없이 주고받았다. 오바마를 침팬지라 부른 경관도 있었다. 백인들은 적당히 봐 주면서 흑인들에게는 가차없이 법을 집행했다. 지방법원도 경찰과 오십보백보였다. 이 모든 것이 흑인들에 대해 ‘의도적 차별’이 있었다는 점을 입증한다.
둘째 보고서의 백미는 3절 ‘세수 확보에 초점을 둔 법집행’에서 찾을 수 있다. 시당국이 경찰과 법원에 압력을 가하여 공공의 안전보다 세금 수입을 중시하는 치안정책에 매진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의 지방경찰과 지방법원(즉결재판소 포함)의 임명과 발령은 해당지역 소관이다. 시의 회계책임자가 법원 판사에게 보낸 공문이 공개되었다. “올해 내 벌금고지서 발부율이 급증하지 않으면 내년의 범칙금 징수율에 문제가 생길 것임. 판매세 징수 부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세수 부족은 심각한 문제임.” 시에서 법원장에게 경찰로 하여금 벌금 부과를 10% 이상 높이도록 독려해 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낸 것도 확인되었다.
시로부터 협조요청을 받은 경찰과 법원은 이에 적극 호응하여 만만한 흑인 시민들을 인정사정없이 쥐어짰다. 경찰 눈에 띄기만 하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달아 벌금을 매겼다. 한번 걸리면 보통 3건 이상 고지서가 발부되었다. 보행규칙 위반 302달러, 가두 소란 427달러, 체포 비협조 777달러, 가옥주변 잡초 제거 불량 531달러, 명령 불응 792달러, 법규준수 불이행 527달러 등, 흑인들을 시 예산 확보의 호구로 취급했다. 사정사정해서 벌금을 분할 납부하게 되어도 납기일을 하루라도 넘기거나 납부금액이 조금만 부족하면 법정출두 거부로 간주하여 체포영장을 발부하였다. 교통신호 위반으로 한번만 걸려도 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은 거의 파산상태에 빠질 정도로 혹독한 벌을 받았다. 대명천지의 소위 문명사회에서 어찌 이런 가렴주구가 있을 수 있는가.
한 흑인 여성의 경우를 보자. 뒤에서 오는 경찰차가 지나가기 쉽도록 차를 길가로 붙였는데 그것을 빌미로 교통방해, 신호위반,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삼중 딱지를 뗀 사건이었다. 법원에 진정을 내자 이번에는 운전면허 정지처분이 떨어졌다. 미국에서 운전면허가 없으면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고, 홀몸으로 키우는 아이들의 보육도 불가능해진다. 인종차별에다 젠더와 빈곤의 차원이 더해져 아주 복잡한 차별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이런 예들을 나열한 후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권고를 제시한다. 시의 세금 수입에만 치중하지 말고 공공안전을 우선시하는 법집행, 경찰인력의 훈련과 감독, 인종 편견을 줄일 정책, 벌금 부과를 위한 체포영장 남발 관행 개선 등이다. 법무부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에릭 홀더 검찰총장의 논평을 덧붙인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그는 퍼거슨시의 법집행에 결정적 하자가 있었음이 밝혀진 만큼 “시의 지도자들이 온전하고 구조적인 시정행동을 취할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구조적 시정행동’이라는 표현이 주는 울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말에도 어폐가 있다. 구조적 해결을 하려면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먼저 규명해야 한다. 퍼거슨시가 세수를 올리기 위해 흑인들에게 범칙금을 남발한 것을 밝힌 것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왜 퍼거슨시가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법무부의 보고서는 이 지점에서 결정적 한계를 보인다. 문제의 근본원인을 간과한 것이다.
퍼거슨시의 2010년 예산은 1100만달러였고 그중 12%가 범칙금으로 충당되었다. 2015년 예산은 1330만달러인데 범칙금 목표액이 24%로 뛰었다. 그 이유는 미주리 주정부가 산하 지자체에 제공하는 지원금이 그동안 계속 줄었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가 각 주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예산의 평균 19%인데 퍼거슨시는 7%에 불과하다. 미주리주의 다른 지자체도 어려운 곳이 많다. 예를 들어 윈저시 공무원들은 시청사 화장실의 휴지를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해도 주지사 제이 닉슨은 예산 삭감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작년에는 주 예산을 4억달러나 삭감했었다. 세인트루이스시와 캔자스시의 공립학교 통학버스 의무제공 제도도 없애 버렸다. 게다가 그런 것들을 자신의 실적이라고 내세웠던 인물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5년 3월 31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4852.html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셀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흑인 참정권운동의 이정표가 된 셀마 행진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그의 메시지는 미국에서 인종차별 현실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이런 해석이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생각한다. 가야 할 길이 멀 뿐만 아니라, 반세기 전에 비해 그 길이 더 복잡해지고 더 험해지고 더 교묘해졌다. 인간의 도덕성은 한길로 진보하지 않고 각 시대마다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는 존 그레이의 통찰이 새삼 와 닿는다.
오바마의 연설 며칠 전에 미 연방 법무부가 보고서 2편을 동시에 펴냈다. 알다시피 작년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대런 윌슨이라는 백인 경찰이 마이클 브라운이라는 18살 흑인 청소년을 사살한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첫 보고서는 이 사건을 시민권 관련 연방 형법으로 기소할 수 있느냐를 다루었다.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국에서 연방법으로 기소하기 위해선 충족되어야 할 필요조건들이 있다. 잠재적 피고가 연방 범죄를 저질렀는가. 연방 범죄 목록에는 부주의과실과 과실치사가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혐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 가능한가. 즉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높은가. 이런 필요조건들에 부합되지 않아 결국 사건을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내용이다.
그런데 퍼거슨시 경찰을 조사한 둘째 보고서가 더욱 주목을 끈다.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인종차별 상황을 다루었던 때보다 더 신랄하게 미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공식 문헌이다. 보고서는 퍼거슨시의 경찰이 불합리한 수색·체포·압수를 금지한 연방헌법 수정조항 4조, 종교·언론·출판·집회 자유를 규정한 1조, 불합리한 강제력 사용을 금지한 4조를 위반했다고 지적한다. 윌슨의 총격이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흑인들에 대한 차별에 일정한 ‘유형이나 관행’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명백한 인종적 편견이 법집행 공직자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던 사실도 확인되었다. 흑인들의 인구 비율보다 처벌 비율이 월등하게 높았고, 경찰들은 근무시간에 공식메일로 ‘비인간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인종적 편견’을 거리낌없이 주고받았다. 오바마를 침팬지라 부른 경관도 있었다. 백인들은 적당히 봐 주면서 흑인들에게는 가차없이 법을 집행했다. 지방법원도 경찰과 오십보백보였다. 이 모든 것이 흑인들에 대해 ‘의도적 차별’이 있었다는 점을 입증한다.
둘째 보고서의 백미는 3절 ‘세수 확보에 초점을 둔 법집행’에서 찾을 수 있다. 시당국이 경찰과 법원에 압력을 가하여 공공의 안전보다 세금 수입을 중시하는 치안정책에 매진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미국의 지방경찰과 지방법원(즉결재판소 포함)의 임명과 발령은 해당지역 소관이다. 시의 회계책임자가 법원 판사에게 보낸 공문이 공개되었다. “올해 내 벌금고지서 발부율이 급증하지 않으면 내년의 범칙금 징수율에 문제가 생길 것임. 판매세 징수 부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세수 부족은 심각한 문제임.” 시에서 법원장에게 경찰로 하여금 벌금 부과를 10% 이상 높이도록 독려해 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낸 것도 확인되었다.
시로부터 협조요청을 받은 경찰과 법원은 이에 적극 호응하여 만만한 흑인 시민들을 인정사정없이 쥐어짰다. 경찰 눈에 띄기만 하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달아 벌금을 매겼다. 한번 걸리면 보통 3건 이상 고지서가 발부되었다. 보행규칙 위반 302달러, 가두 소란 427달러, 체포 비협조 777달러, 가옥주변 잡초 제거 불량 531달러, 명령 불응 792달러, 법규준수 불이행 527달러 등, 흑인들을 시 예산 확보의 호구로 취급했다. 사정사정해서 벌금을 분할 납부하게 되어도 납기일을 하루라도 넘기거나 납부금액이 조금만 부족하면 법정출두 거부로 간주하여 체포영장을 발부하였다. 교통신호 위반으로 한번만 걸려도 빈곤층이나 차상위계층은 거의 파산상태에 빠질 정도로 혹독한 벌을 받았다. 대명천지의 소위 문명사회에서 어찌 이런 가렴주구가 있을 수 있는가.
한 흑인 여성의 경우를 보자. 뒤에서 오는 경찰차가 지나가기 쉽도록 차를 길가로 붙였는데 그것을 빌미로 교통방해, 신호위반,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삼중 딱지를 뗀 사건이었다. 법원에 진정을 내자 이번에는 운전면허 정지처분이 떨어졌다. 미국에서 운전면허가 없으면 직장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고, 홀몸으로 키우는 아이들의 보육도 불가능해진다. 인종차별에다 젠더와 빈곤의 차원이 더해져 아주 복잡한 차별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이런 예들을 나열한 후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권고를 제시한다. 시의 세금 수입에만 치중하지 말고 공공안전을 우선시하는 법집행, 경찰인력의 훈련과 감독, 인종 편견을 줄일 정책, 벌금 부과를 위한 체포영장 남발 관행 개선 등이다. 법무부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이례적으로 에릭 홀더 검찰총장의 논평을 덧붙인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그는 퍼거슨시의 법집행에 결정적 하자가 있었음이 밝혀진 만큼 “시의 지도자들이 온전하고 구조적인 시정행동을 취할 때가 됐다”고 강조한다. ‘구조적 시정행동’이라는 표현이 주는 울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말에도 어폐가 있다. 구조적 해결을 하려면 구조적 문제가 무엇인지 먼저 규명해야 한다. 퍼거슨시가 세수를 올리기 위해 흑인들에게 범칙금을 남발한 것을 밝힌 것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왜 퍼거슨시가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법무부의 보고서는 이 지점에서 결정적 한계를 보인다. 문제의 근본원인을 간과한 것이다.
퍼거슨시의 2010년 예산은 1100만달러였고 그중 12%가 범칙금으로 충당되었다. 2015년 예산은 1330만달러인데 범칙금 목표액이 24%로 뛰었다. 그 이유는 미주리 주정부가 산하 지자체에 제공하는 지원금이 그동안 계속 줄었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가 각 주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예산의 평균 19%인데 퍼거슨시는 7%에 불과하다. 미주리주의 다른 지자체도 어려운 곳이 많다. 예를 들어 윈저시 공무원들은 시청사 화장실의 휴지를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해도 주지사 제이 닉슨은 예산 삭감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작년에는 주 예산을 4억달러나 삭감했었다. 세인트루이스시와 캔자스시의 공립학교 통학버스 의무제공 제도도 없애 버렸다. 게다가 그런 것들을 자신의 실적이라고 내세웠던 인물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5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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