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메르스와 위험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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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6-12 14:56 조회31,61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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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5년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영국 런던에는 페스트가 돌았다. 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은 휴교에 들어갔고, 뉴턴은 고향 울스소프로 돌아갔다. 고향에서 뉴턴은 거의 자가격리 상태에서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휴교는 2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뉴턴은 이때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중력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고, 프리즘을 가지고 빛이 무지개색으로 나뉘는 것을 관찰하며 빛에 관한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의 가장 중요한 발견들이 이 기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뉴턴이 살던 시절과 마찬가지로 메르스 유행 사태로 상당수 학교가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기장이나 극장, 시장도 한산해졌다. 학교에 못 가는 학생들은 놀이터에도 나가지 못하고 아마 집안에서 빈둥거릴 것이고, 직장 다니는 부모들은 이 아이들 건사하는 일로 골치가 꽤 아플 것이다. 매출이 떨어진 상점들은 갈수록 시름이 깊어갈 것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로 경제가 침체된다고 안절부절, 그렇다고 해서 유행병을 막지도 못하며 우왕좌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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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유행 사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지, 이 위험이 얼마나 빠르게 퍼져나갈 수 있는지 잘 드러내준다. 그리고 위험의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이 어떤 심리상태가 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에 가득한 위험들은 제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관리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 사람들은 이런 위험을 거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대 역병이 돌아도 원인을 몰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종종 희생양을 찾아서 분풀이를 하는 것이 최대의 대응이었다.
지금은 이전과 달리 위험의 원인을 아는 시대가 되었다. 알기 때문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더 큰 위험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유행병의 원인도 알 뿐만 아니라 제철공장, 화학공장, 원자력발전소 같은 곳에서 발생하는 대형사고의 원인도 알고 있고, 그렇기에 이미 대처방안도 마련해놓고 있다. 대처방안이 있으니 안심하며 살아가고 더 많은 위험의 발생원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이런 대처방안들의 특징은 모두 외적인 수단에만 의존할 뿐 사람들의 내면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위험을 대하는 개개인의 자세와 태도, 사회의 성숙한 대처는 괄호 속에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대처방안이 잘 먹혀들지 않으면 당황하게 되고, 혼란과 공포가 더 심해진다.
(후략)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5년 6월 10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610210804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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