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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청년이 ‘숨 막히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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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11-24 14:18 조회29,6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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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내가 다니던 베를린공대의 신입생 화학실험실은 20세기 초 수준이었다. 그곳은 코를 통해 몸으로 들어오는 화학물질 냄새와 오래된 실험실 고유의 냄새를 통해 학생들이 실험준비를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의관’을 갖추도록 만드는 장소였다. 몇해 전에 베를린 공대를 다시 찾아가서 그 ‘특별한’ 실험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시간당 10차례 공기가 교환되는 최신형으로 수리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정도면 실험실 전체가 강력한 후드가 되어 공기 중의 유해물질이 즉각 제거된다. 학생들은 항상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실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학생들의 건강을 세심하게 보살피게 된 것인데, 나는 칭찬 대신 오히려 환기를 그렇게 심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 그러면 난방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지 않느냐는 식의 문제제기를 했고, 실험 담당 교수도 이에 동의했던 것 같다.

시에 나는 독일인들의 과도한 건강 걱정을 속으로 비웃었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다. 독일의 출산율은 1970년대 중엽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함없이 1.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 정부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방안은 모두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아마 많지는 않지만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성인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키워서 인구감소를 조금이라도 막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게 아닐까, 실험실 공기를 그토록 많이 교환해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국의 정부와 여당도 아이가 줄어드는 게 걱정이긴 한 것 같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싱글세’나 다자녀 출산여성 비례대표 우선공천 같은 ‘기발한’ 방안을 속속 내놓는 걸 보면, 정말 나라의 미래를 위해 고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무상보육을 둘러싼 그들의 최근 주장을 보면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잘 키워서 나라를 맡긴다는 생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그들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살다보면 사고로 죽을 수 있다는 말은 생산가능 인구자원이 줄어드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의 입에서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들이 진심으로 인구감소가 가져올 나라의 재앙을 걱정한다면, 아이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낳을 수 있는 젊은이들을 죽거나 다치게 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반도체 공장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회복불능의 병에 걸리거나 출산불능 상태가 된다. 노동자들은 낡은 소모품처럼 버려진다. 어린이들은 행복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자란다.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에 허덕이며, 이 돈 마련을 위해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에 나선다.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들이야말로 귀하게 대접해야 할 텐데 아무것도 바뀌는 것 같지 않다.
(후략)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경향신문, 2014년 11월 19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119210346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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