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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유리지갑과 13월의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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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1-30 14:13 조회28,3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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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이라는 사물은 ‘돈’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됐을 것이다. 하지만 돈도 여러 종류다. 최초의 화폐는 조개껍데기나 볍씨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이런 ‘원시적 화폐’가 아니더라도 동아시아 문명의 기초가 다져진 중국 춘추시대에는 첫 화폐로 ‘포전’과 ‘도전’이 쓰였다. 포전은 ‘삽’이며 도전은 ‘칼’이다. 철기문명 초기였기 때문에 철로 만들어진 도구들이 매우 귀했던 까닭이다.

삽과 칼을 담는 지갑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갑 역사는 ‘동전’이 발명될 무렵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초기 지갑 모양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동전이 최초로 발명된 기원전 7세기께 서아시아 지역에서도 그 지갑은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담배 가게 할머니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전대’였지 않았을까.

종이돈이 생기고, 카드 같은 신용화폐가 주가 되면서 지갑 모양은 지금 우리가 쓰는 작은 사각형 모양으로 바뀌었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거나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이며, 주된 재료는 찢어지지 않는 가죽이나 섬유다.

그런데 모양이 전대든 지금 통용되는 지갑이든 간에 지갑 만들기의 핵심은 쉽게 돈을 꺼낼 수는 있지만 내부 내용물을 타인에게는 노출시키지 않는 ‘은폐술’이다. 여기에는 아주 오래돼 의식하지 못하는 금기 의식도 스며 있다. 예부터 재물은 ‘복(福)’이며, 복은 ‘복이 나가지’ 않도록 잘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나 모바일카드와 같은 화폐 형태의 획기적 전환은 원천적으로 ‘내 복’을 숨길 수 없는 시대 조건을 환기한다. 제 아무리 좋은 가죽과 기술로 만든 명품 지갑이라 해도 투명하게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유리지갑’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5년 1월 23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76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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