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 염무웅의 ‘문학과 역사’라는 공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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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2-13 14:49 조회29,68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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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일수록 굽히고 있다. 낮은 산보다 비교적 완만하다는 의미로. 숨 쉬는 데 코와 입을 다 써도 모자랄 만큼 헉헉댈 때면 안다. 한걸음 떼기도 얼마나 무거운지. 그러니 큰 산을 오를 땐 일찍 진력이 나느니 반걸음씩 가자는 다짐이 현실적일 수 있다. 이 산이 몸을 숙여주고 있다는 믿음은 힘이 된다.
원로 독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의 두번째 산문집이 나왔다. 지은이는 “경제가 사회를 운용하고 존재의 전체를 지배”하는 시대엔 “정의를 향해 반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평범한 삶의 지탱도 어렵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불의를 향해 시비”를, 곧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미래에 대한 큰 확신이 아니라 현존의 작은 요구들 때문”이라 한다. 이는 내일에 대한 염세가 아니다. “불확정적이기에 더 많은 열정이 필요한 미래”란 10여년 전 인식의 연장으로 이해된다.
‘통일 대박’이라는, 한걸음도 아닌 한달음에 대한 확신보다 반보라도 진보하려는 “현존의 작은 요구”가 통일에 실효적임을 지은이는 과거로부터 배웠다. 그는 통일 독일의 초대 대통령 바이츠제커를 교훈 삼는다. “동독보다 극단적인 집단주의 사회화를 겪은 북한과 서독처럼 북한을 돈으로 살 처지가 못 되는 남한”인 만큼 더 심한 진통을 예상하고서 “낙원을 가져오리란 믿음보다 지옥에 이르지 않게 하리라는 희망으로 통일을 추구하라”는 경험칙. 고통받는 이의 최소화가 최대의 희망이란 뜻일 테다. 특히 바이츠제커는 통일을 “시대 변화에 대한 적응의 일환으로 간주했다.” 밀어붙인 게 아니라 통일이 밀려들도록 국제 정세를 재편한 고급 외교의 힘을 지은이는 주시한다.
북방한계선(NLL) 논란과 비슷한 난리가 독일에도 있었다. 오데르·나이세 국경선 논쟁. “1970년 서독 수상은 이 국경선을 인정하는 바르샤바 조약에 서명해 서독과 동유럽 간 화해”를 이끌었고, 이는 1972년 동서독 상호기본조약 체결이란 통일의 정지작업이 됐다. “국경선도 영토선도 아닌 엔엘엘로 나라를 뒤집어놓은 사람들”에게 지은이는 70년 독일의 얼굴을 비춘다.
(후략)
석진희 한겨레 기자
(한겨레, 2015년 2월 12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826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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