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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갈등과 증오의 덫을 넘는 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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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5-04 11:39 조회29,6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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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갈등의 원인이자 당사자이다. 지리멸렬한 야권은 비판하기조차 민망하다. 언론 또한 기능을 상실하고 권력의 입맛대로 대립과 싸움을 부추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할 시행령을 내놓은 정부, 권력의 속셈대로 유가족에게 지급될 돈의 액수부터 외워대는 언론, 그리고 인양을 반대하는 이유는 건져낸 배 안에 실종자 시신이 없을 경우의 허망함까지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여당 의원의 발언은 글로 옮기기조차 불편하다.

불의 앞에 솟구치는 분노는 증오와 엄연히 다르다. 의롭지 못한 자들은 분노와 증오의 구분을 교묘히 흐리면서 분노의 원인을 숨기려 든다. 그러나 분노가 불의를 물리치는 길을 찾지 못한 채 분노에 머무는 순간 맹목적인 미움으로 변질되기도 쉽다. 나라를 운영하는 집단이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무책임하게 부추기는 지금이 그런 위기의 시간이다.

그래서 미국의 베트남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은 좋은 생각거리이다. 2012년부터 2025년까지를 50주년 기념기간으로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포문을 포함한 사업의 성격은 참전군인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와 경의를 보내는 쪽에 치우쳐 있다. 물론 격렬한 반전운동에 부딪히는 가운데 참전군인들이 이중으로 상처를 입은 과거에 대한 깊은 배려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와 애국심만 강조하는 가운데 명분 없는 전쟁의 역사적 진실이 손쉽게 가려진다. 300만명이 넘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인명 피해는 까맣게 잊힌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미국 정부의 기념사업은 자기 땅을 지키려 싸운 베트남 민중과 잘못된 전쟁에 반대한 수많은 자국 시민에 대한 무시와 모욕, 증오를 감추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명분 없는 전쟁을 벌여 온 미국의 실상이 새삼스럽다.

하지만 참전군인의 경험이 그저 헛된 것이었다고 맞받아치면 증오의 정치라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미국의 양심적인 역사학자들은 미국 국민이 참전용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구한다고 해야 옳다고 주장한다.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나가 싸우게 한 데 대해, 이후의 삶이 후유증으로 망가진 일에 대해, 살아남은 참전용사들을 돌보는 일에 등한했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먼저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우리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는 1980년 광주에서 경찰관 4명과 계엄군 23명을 잃었다. 계엄군 전사자의 절반은 5월24일 매복 중이던 광주 지역의 군 병력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나타난 특전사 병력을 시민군으로 오인해 대전차포 등으로 기습한 사건에서 나왔다. 이미 특전사 부대는 어린이도 섞인 길가의 주민들에게까지 총격을 가하면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계엄군 간의 교전으로 수십명이 죽고 다친 참변 직후 아예 제정신을 잃고 인근 마을을 뒤져 죄 없는 청년들을 끌어내 사살했다. 극우 인사의 저서도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고 기록한 일이다. 그 눈먼 증오의 순간이 수십년이 지나도 참혹하다.
(후략)


김명환 서울대 교수, 영문학
(경향신문, 2015년 5월 1일)

기사 전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01205006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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