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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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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5-04 11:46 조회29,6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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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전역에 나치 정권의 인권침해와 홀로코스트 관련 기념물, 기념관, 추모시설이 산재해 있다. 베를린과 그 주변 브란덴부르크주에만 스무군데가 넘는다.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독일의 외교에서 중요한 부분인 인권정책이 과거사 의무에서 비롯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한 외무부 관리에게 던졌다. 그 점이 계기가 되었을 수는 있지만 인권의 본유적 가치를 지향하려는 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음달 초면 유럽에서 2차대전 종전 70주년이 된다. 최근 독일 베를린 교외의 카를스호르스트에 다녀왔다. 1945년 5월8일 소련을 위시한 연합군 대표들이 독일군으로부터 무조건 항복 서명을 받은 곳이다. 독일 입장에서 보면 치욕적인 장소일 텐데 독·러 기념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평일인데도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요즘 독일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회계병이었던 오스카어 그뢰닝의 재판이 열리고 있다. 아흔이 넘은 전 나치대원을 법정에 세워 책임을 묻는 광경을 보면서 독일인들이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독일 전역에 나치 정권의 인권침해와 홀로코스트 관련한 기념물, 기념관, 추모시설, 자료관이 산재해 있다. 제3제국의 수도였던 베를린과 그 주변 브란덴부르크주에만 스무군데가 넘는다. 그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 마음이 들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새로운 역사 편찬 관점이 대두되면 그에 맞춰 새로운 방식으로 추모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역사적 장소들을 유지하도록 지원을 한다. 나치 시대의 시설을 사용하던 러시아군이 통독 후 물러가면서 그 공간을 역사 기념 장소로 탈바꿈시킨 경우도 많다. 이곳에 있으면서 틈이 날 때마다 이런 장소들을 방문하고 있는데 어딜 가나 견학 온 학생들이 없는 곳이 없다. 프랑스나 영국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도 보인다. 견학 전에 준비를 많이 해 온 것 같다.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가 언제 어떤 지침을 내렸고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를 교사가 물으면 학생들이 손을 들고 대답할 정도다.


이런 장소들의 목적은 첫째 역사교육, 둘째 정치교육이다. 아마 시민 정치교육의 일환이라는 뜻인 것 같다.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늘 강조한다. 예를 들어 보자. 1942년 1월 이른바 유대인 최종 해결책을 위한 회의가 열렸던 반제 호숫가의 기념관에는 연중 내내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흥미롭게도 학생들만이 아니라 각종 직업군에 속한 사회인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회사의 신입사원 교육, 보수교육, 각종 직업학교의 도제 교육의 일환으로 반제 호수 기념관을 찾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치 정권의 산업정책과 전쟁 수행에는 기업들이 광범위하게 호응했다. 군수, 화학, 약품, 제철, 철도, 자동차, 건축 등 수많은 산업부문에서 나치가 동원해준 강제노동자들을 저임으로 부려먹고, 정부 사업을 수주하여 엄청난 이득을 올렸다. 이런 식으로 사기업들이 독재정권에 부역한 것이 어떤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오늘의 직장인들, 사원들, 기술자들, 산업 역군들에게 가르치고 스스로 판단하게끔 한다. 이 모든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타자와 공존하는 민주 사회를 함양하는 데 있다.


과거에는 강제수용소나 나치 정권의 주요 시설들, 다시 말해 가해와 범죄의 현장을 보존하는 데에 주로 노력을 기울였다. 역사적 장소를 훼손하지 않고 대중들에게 개방한다는 취지가 강했다. 오래전 다하우 수용소를 방문했을 때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물론 이런 점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새로운 역사 현장을 발굴하고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대중을 맞는다. 예를 들어, 종전 직전 게슈타포가 수만명의 수인들을 죽음의 행진으로 내몰았던 벨로 숲에는 야외 기념공간이 새롭게 들어섰다.


그러나 역사 현장의 보존을 넘어 희생자들의 추모를 전면에 내건 기념물, 기념관이 늘어나는 추세를 읽을 수 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 프랑크 하우스의 자매 시설이 여기에 있을 정도다.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지난 10년 사이 나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상징들이 여럿 생겼다. 2005년 브란덴부르크문 지척에 건립된 거대한 규모의 유럽 유대인 희생자 추모관이 대표적이다. 2008년에는 나치의 박해를 받았던 동성애자들을 추모하는 조형물이 만들어졌다. 그 뒤를 이어 2012년에는 신티-로마 집시들의 추모 정원이 조성되었다. 연방의회 의사당 건물이 수면에 비치도록 연못 형태로 꾸며진 아름답고 고요한 공간이다. 작년 말에는 나치 정권이 집권 후 제일 먼저 노약자들에게 강제 안락사를 시행했던 T4 프로그램의 30만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들어섰다. 시내 중심지의 반경 1㎞ 이내에 이런 기념물들이 모여 있으니 과거사 추모가 곧 시민들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는 셈이다.


희생자들의 추모와 함께 새롭게 조명되는 분야가 있다. 나치 정권에 저항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움직임이다. 히틀러에 열광하고 나치즘에 지지를 보내고 유대인들의 박해를 암묵적으로 또 명시적으로 도왔던 수많은 독일 국민들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히틀러를 제지하려 했던 소수의 몸부림도 있었다. 영화 <발퀴레>(국내 개봉명은 <작전명 발키리>)의 소재가 되었던 히틀러 암살 시도가 일어났던 육군총사령부 건물은 현재 독일저항기념센터가 되었다. 거리 이름도 슈타우펜베르크가로 개명되었다. 꼭 방문해 볼 만한 곳이다. 저항자들의 이야기를 범주별로 분류해 보여준다. 노동조합원, 공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민주주의자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개신교와 가톨릭 종교인들 중에도 소수의 저항자들이 있었다. 평화주의자, 반전주의자, 새로운 독일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의 토론 모임 등 다양한 저항의 움직임도 묘사되어 있다. 아무 조직적 연계 없이 개인 차원에서 저항했던 사람도 있었다. 혼자서 히틀러 암살을 계획했던 게오르크 엘저 같은 이가 좋은 예다. 최근 올리버 히르슈비겔 감독의 영화 <엘저>가 개봉되어 대중의 관심이 이 주제에 쏠려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런 조류에 대해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의 움직임을 과대 포장하여 독일 국민 전체의 죄의식을 결과적으로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저항자들이 히틀러에 반대하긴 했어도 당시 널리 유포되어 있던 반유대주의 성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점들을 잘 감안하면서 저항자들의 활동을 널리 알리는 것은 그 나름의 교육적 의미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5년 4월 28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88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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