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서울은 로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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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1-05 16:55 조회27,7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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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기대를 무참하게 배신하는 선거 결과를 접하고 눈과 귀를 의심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국민이 미친 것이 아닌지, 머리가 아니라 배로 투표한 것이 아닌지 원망한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야속한 표심을 냉철히 분석하여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국민투표로 3권 혹은 4권 분립을 결정한 민주국가에서는 선거 결과와 헌법재판소 결정 및 대법원 판결은 그 위상이 거의 같다. 최종심이다. 물론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을 개정해 헌재를 없앨 수 있다. 총선을 통해 입법부를 재구성해 헌재나 대법원의 권능을 제한하고 재판관들을 갈아 치울 수 있다. 하지만 현행 헌법과 법률 아래서는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은 선거 결과와 같다. 물론 결정의 내용(논리), 시점, 재판관의 배경, 충원 방식과 헌재 자체의 존폐 문제도 시비할 수 있다.
그런데 1987년 헌법에 의해 탄생한 헌재가 지난 27년 동안 수많은 결정을 통해 그 나름대로 신뢰와 권위를 축적했고, 결정이 나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기각(통합진보당 존속)을 예상한 사람이 많았다면, 헌재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지 않고, 임기 3년 남짓 남은 정권이 이들에게 줄 당근도 채찍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결정은 정치적으로 보수에 좋을 것이 없다. 양대 진영의 연대 연합이 필수인 선거제도 아래서 상대의 약점에 집중 공격을 퍼붓는 것이 선거 전략의 기본인데 극심한 공포, 혐오의 공장인 정당이 ‘진보’ 간판을 달고 그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보수에 왜 나쁘겠는가? 요컨대 이번 결정도 기존의 많은 결정처럼 정권적, 진영적 고려는 별로 없는, 재판관 개개인의 소신과 양심에 따른 결정으로 볼 근거가 충분하다.
(후략)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동아일보, 201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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