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균] 베개-매일매일 다른 것과 만나는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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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2-09 14:39 조회29,2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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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업무를 마치고 저녁에 찾아간 호텔은 맘에 들었다. 체크인을 하고 키를 받아 방으로 들어간다. K는 호텔 냄새를 좋아한다. 이 특유의 냄새는 하얀 시트와 침구가 깔려 있는 정갈한 침대와도 관련이 있다. 피곤한 몸은 샤워를 하고 났더니 더 노곤해진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는 수면욕을 불러일으킨다. 침대에 눕자마자 1분 안에 스르르 잠이 들 것 같다.
그런데 K는 무언가 이 잘 정리된 침대에 불편함을 느낀다. 시각적으로 무언가 중요한 구성 요소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완벽히 갖춰진 객실에서 빠진 이 단 하나가 수면욕을 방해한다. 어떤 결여가 그를 불편하게 하는 걸까. 바로 베개다. 그는 허둥지둥 베개를 찾는다. 특이하게도 이 객실에는 베개가 다른 한편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는 안심한다.
예전에 들렀던 외국의 한 호텔에서 베개가 침대 위에 놓여 있지 않은 풍경을 본 적이 있다. 당신도 상상해 보라. 당신 집 온돌방이어도 좋다. 잘 깔린 요와 이불에 베개가 없다면?
모든 생물은 잠을 잔다. 잠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하는 일시적인 ‘반죽음’ 상태다. 그런데 베개를 베고 자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베개는 직립보행하는 인간 뼈대 형태의 필요를 직접 반영하는 물리적 도구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5년 2월 6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12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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