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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바둑알 - 시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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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5-03-16 12:49 조회28,9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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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밥만 배부르게 먹고, 마음 쓸 재미난 일이 없으면 그것도 얼마나 힘든 일이겠니. 장기나 바둑이 있지 않니. 그거라도 둬보는 게 어때?"

이 다정다감한 말은 친구가 한 게 아니라, 기원전 사람인 공자가 한 얘기다. 장기와 바둑이 꽤 오래된 놀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얘기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禮)를 종합한 저 유명한 학문적 스승도 일상적인 놀이를 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같으면 `보드게임`을 같이 하자고 권유했을지도 모르겠다. 뭐든지 변방에 있는 사람들은 완고한 규율을 강요하지만, 원류가 되는 사람은 여유가 있으며 유머러스하다.

그런데 바둑은 장기와 많이 다른 놀이다. 무엇이든지 핵심을 파악하는 지름길은 `행위의 주체`를 살피는 것이다. 바둑과 장기의 차이는 사각형 격자판 위를 돌아다니는 바둑알과 장기알의 차이가 아닐까.

바둑판이나 장기판이나 이것들을 `전쟁` 상황에 대한 비유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승부를 겨루는 `게임` 자체에 내재한 본질이니까. 그러나 한나라, 초나라 같은 국가명이 쓰여 있고, 그에 따라 왕과 장군과 졸병의 계급장이 새겨진 장기알은 국가를 거대한 병영(兵營)으로 해석한다. 다른 하나를 죽여야 내가 사는 호전성은 초(楚)와 한(漢) 두 국가 사이에만 내재한 게 아니라, 실은 같은 색깔(나라)의 장기알 내부에도 스며 있다.

바둑알의 흑백은 차이를 표시하지만 사회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훨씬 더 추상적이다. 흑과 백은 국가 상징도 아니고, 선악의 윤리적 대비를 표시하는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흑의 바둑알은 그것대로, 백의 바둑알은 그것대로 바둑알에 위계 표시가 없는 평등한 돌들이라는 점이다. 장기알이 서열(능력)에 따른 개별 `전투`를 일대일로 치르는 데 비해 바둑알은 평등한 돌들의 협동을 통해 집을 짓는 총체적인 `전쟁`을 치른다. `왕` 하나가 잡아먹히면 끝나는 장기에 비해 바둑은 개별성들이 모여 이룬 전체의 형세(집)가 중요하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5년 3월 13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5&no=24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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