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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남재희·최태욱 대담) 야당,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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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12-22 20:11 조회28,1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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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문제라는 말은, 기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막연히 북한을 추종할지 모른다는 의심만으로 200만 표를 얻은 정당 하나를 강제해산시켜버린 정치, 사법, 언론, 자본의 위력적인 동맹을 확인하고 나니 새삼 그렇다. 

다수파가 되지 못해 야당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야당이 다수파가 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집권세력의 실력이 변변치 않아도 야당이 번번이 집권에 실패하는 큰 이유다. 집권세력에 실망한 사람들조차 야당의 부진에 혀를 차며 정치에서 눈을 돌려버리는 건 아이러니다.

그래서 다시 야당이다. 야당의 부진이 여당의 독주로, 다시 정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야당이 끊어내는 수밖에 없다. 불리한 정치 환경을 극복할 체력을 키우든가, 아예 판을 바꾸든가.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과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가 야당의 진로를 모색했다.  

남 전 장관은 오랜 정치 경험과 식견에 근거해 현실적 접근을 주문했다. 한국 정치에서 제3정당의 성공이나 진보정당의 집권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양당 질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진보적 정책을 관철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문이다. 

이를 위해선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체성 확립이 선결 요건이다. 남 전 장관은 새정치연합의 정체성 혼란에 대해 "몰지각한 사람들이 중도화를 주장한다"며 "우경화의 늪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새누리당과 대별되는 진보진영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남 전 장관은 "새정치연합은 정체성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당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남 전 장관은 "한국은 여당과 야당이 거의 1대 1 구도를 갖추고 있다"면서 '감동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심각한 위기로 가는 추세인 만큼 "언젠가는 대중적 반란이 등장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며 "이 때 감동을 주는 정치 지도자가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최태욱 교수는 체제 전환을 위한 과감한 시도를 강조했다. 현재와 같은 양당 질서에서 '적어도 2등은 할 수 있다'는 기득권을 새정치연합이 스스로 내려놓아야 더 큰 승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지금 새정치연합이 해야 할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쳐보겠다는 공세"라며 체제 전환의 요체로 "정치체제 개혁 논의를 곧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정치체제 혁신의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지금 같은 양당제와 승자독식형 선거제도에선 경제민주화나 복지와 같은 약자들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없다"며 선거가 없는 내년에 "국민들을 선거제도 개혁 과정에 동참시키고 새누리당을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체제 전환 대통령'을 선언하고 국민 투표 방식 등을 통해 선거 제도 개혁을 해내는 것만이 보수 장기 집권을 막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남재희 전 장관과 최태욱 교수의 대담은 지난 16일 진행됐으며, 박인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이사장이 함께 했다. <편집자> 


한국 야당은 일본 민주당과 다를까?
 

프레시안 : 우리 정치가 점점 일본을 닮아간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최근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보수당인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다. 아베노믹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역대 최저치의 투표율(52%)을 보였다. 야당의 몰락이 자민당 독주로, 다시 정치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이 같은 일본 정치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을 것 같다.  

남재희 : 참패도 보통 참패가 아니다. 일본 민주당이 정말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과거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시절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 공약이 결정적 패착이었던 것 같다. 오키나와 기지 이전 시도는 미국의 대 아시아 전략, 특히 동북아 전략의 핵을 건드리며 양국 갈등을 표면화했고, 기지 이전이 좌절된 이후 민주당은 계속 죽을 쑤고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번 선거가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단 평가를 받는 까닭에 일찍 당겨서 치러진 것이란 점이다. 아베의 경제 정책이 경기를 더 하강 국면으로 끌어내리기 전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 속에 진행된 선거였다. 아베노믹스가 일본 국민 사이에서 엄청나게 인기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또 하나는 이번 선거를 통해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자’는 식의 아베의 외교·안보 정책이 전후 70년을 맞고 있는 일본 국민의 정서와는 안 맞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다. 선거 결과를 보니 연립 여당에 대한 지지는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많이 나왔더라. 그간 아베 정부가 위안부, 독도, 센카쿠 열도 등을 둘러싼 문제에서 가슴을 확 펴는 식의 태도를 많이 취했는데 이것이 국민 정서를 움직인 것 같지는 않다. 

최태욱 : 지금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며 '미국보다 아시아가 중요하다'고 외치던 하토야마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한때는 민주당이 얼마나 선풍적 인기를 끌었나. 2009년 선거에선 총의석(480석)의 64%를 얻었었다. 당시 고이즈미-아베 라인을 타고 불거진 신자유주의 문제를 배경으로, 유권자들은 비교적 개혁적인 민주당에 표를 몰아줬다.  

그랬던 민주당이 무너진 것은 무모한 안보·대미 정책이 실패한 것에 더해 무모한 복지 공약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아동 수당, 무상 고교 교육, 구직자 지원 등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 복지 공약을 남발하면서도 이것이 증세 없이 가능하다고 국민들을 꼬드겼지만 해보니 되지를 않았다. 그렇게 하토야마의 지위가 흔들리며 칸 나오토 수상이 그 뒤를 이었고 칸 수상은 '복지 주도 성장론'과 같은 생경한 개념을 꺼내놓으며 '증세가 필요하다' 쪽으로 정책 기조를 바꾸었다.  

자민당과의 차별은 두어야겠고, 그럼에도 증세 없는 복지는 어려우니 '제3의 길'을 말했던 것인데, 그럼에도 민주당은 그 후 선거에서 처참히 졌다. 국민들이 보기에 '자기들 마음대로'라고 생각했던 결과다. 안보에서도 무능하고 사회‧경제 정책에서도 무능하며, 사실 이들 또한 결국은 보수 정당이란 평가가 퍼졌다. 그렇게 3년 3개월 동안 쌓인 '무능한 정권'이란 인상에서 민주당은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일본 또한 1993년 선거제도 개편으로 보수 양당제를 택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다시 대안은 자민당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이것이 전후 최저 투표율인 52%란 결과를 낳았다. 사실상 거의 포기했단 얘기다.   

이러한 일본 상황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칫하면 다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수 정당으로부터 정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한국의 야당 또한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고 못 하고 있는 것이 마찬가지고, 국민에게 무능하다고 찍힌 것도 비슷하다. 정치 제도 또한 실질적인 양당 체제다.  

남재희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야당은 강하다" 

프레시안 : 야권을 외곽에서 지원하던 시민사회계의 영향력이 약화되어가는 반면 자본과 보수당의 동맹은 강해지고 있다. 여기에 종합편성채널의 등장 등으로 보수 쏠림의 언론환경까지 겹쳐있다. 야당의 정치 환경이 무척 열악해졌지만, 그래서 오히려 야당이 정치의 영역에서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되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재희 : 물론 일본 민주당의 급전직하를 연구해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야당은 일본에 비해선 강한 편이라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본래 전후 초반 일본을 두고 양당제가 아닌 1.5정당 체제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한국은 여당과 야당이 거의 1대 1 구도를 갖추고 있다. 지난 대선만 해도 1%포인트 수준으로만 득표율이 뒤집혔어도 당락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국정원의 엄청난 선거 장난만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랐을 거란 얘기다.  

일부에선 새정치연합이 다 망해가는 것처럼 혹평하는데,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라고 본다. 으레 정당이란 당수나 대통령 후보가 없으면 산만하기 마련이다. 새정치연합은 그간 당의 중심이 될만한 당수가 사실상 없는 상태였고 강한 대통령 후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살림이 엉망일 수밖에 없다. 내년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정리하면 지금보다는 구심력이 생길 것으로 본다.  

우리가 정당을 굉장히 결속력이 강한 조직으로 생각하는데, 미국 민주당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미국 민주당은 굉장히 느슨한 형태가 아닌가. 보수 세력이 있고 진보 세력이 있으며 평소엔 오합지졸 같다가도 선거 때나 이슈가 있으면 뭉친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 야당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정 체제 하에서 늘 탄압받는 조직이었다. 그러다 보니 단결력도 있었고 투쟁력도 있었다. 국민들에게도 그런 야당 이미지가 익숙해져 오늘날 야당 모습을 보고 약한 야당이라고 평가하는 것 같다.  

또, 대안 제시를 못 한다고 하는데, 사실 신자유주의 이후 경제적인 대안 제시는 누구에게나 어려워졌다. 국민 경제가 세계 경제에 완전히 편입되다 보니, 미시적인 대안이 나올 수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갖은 생각 다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 세력 또한 굉장히 약화했고 종편과 주류 언론은 사사건건 야당을 물고 넘어지고 있으며 민심 역시 불만은 있지만 현재로선 잠잠한 듯이 보이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자본의 힘이란 건 정말로 엄청나다. 양당을 손아귀에 다 가지고 있다. 지역구 의원들 선거 자금, 돈 쓰는 거 다 어디서 나오겠나.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다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자본의 비위를 안 상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이처럼 상황이 어려운데도 2년 전 대선에선 득표율이 반반 가까이 나오지 않았나. 야당에 대한 민심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비관적인 수준은 아니다.  

최태욱 "정치제도 개혁 없인 기울어진 운동장 못 바꾼다" 

프레시안 : 그럼에도 상당히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대표적인 표현이다. 최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보수와 진보의 1대 1 진영 구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최태욱 : 그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게 결국은 구조인데, 보수 우위의 정치 지형을 만드는 여러 구조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게 선거 제도다. 양당제를 채택한 국가는 거의 예외 없이 보수파가 선거에서 승리하는 비율이 높았다. 몇몇 정치학자가 1945년 이후 50년간 양당제 국가와 다당제 국가의 정부 성향을 비교해 봤는데, 양당제 국가에선 75%의 확률로 우파가 정권을 잡았더라. 이를 '75%의 룰(규칙)'이라고 한다. 

그 이유도 설득력 있다. 양당제는 결국 중도층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의 싸움을 만든다. 선거 때만 되면 중도 수렴 정책이 나오는 이유가 그래서다.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중산층은 진보 쪽에 표를 주면 저들이 언젠가는 '극좌'가 되어 세금을 올릴 가능성을 걱정하기 마련이다. 반면 우파가 잡으면 적어도 내 것을 빼앗아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비교적 안전한 우파에 표를 던지게 되고 보수가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75% 룰은 한국에도 대체로 들어맞는다.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보면, 노무현 정부만 유일하게 진보 세력 홀로 정권을 잡은 것이다. DJP도 연립 정부였으니 선거 결과들을 다 놓고 보면 우리도 75%더라. 이 75% 룰이 유지될 것을 감지한 언론, 관계, 재계가 백낙청 교수가 말한 분단 체제에서 생긴 보수 수구 연합체에 붙어 커다란 성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질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 
(후략)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 교수
(프레시안, 2014년 12월 22일)

기사 전문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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