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제] 범죄와 형벌은 인권의 시금석
페이지 정보
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8-22 13:50 조회30,28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조효제의 인권 오디세이
영국 식민지였던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일어난 일이다. 본국 정부의 과세 정책에 분노한 시민들이 소요사태를 일으킨 와중에 영국군이 명령 없이 발포하여 민간인 5명이 죽고 여러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1770년의 보스턴 학살 사건이다. 여러 군인들이 재판정에 섰다. 사건의 성격상 아무도 이들을 변호하려 하지 않았는데 존 애덤스라는 젊은 변호사가 나섰다. 영국에 비판적이던 식민지의 전도유망한 법률가. 나중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미국의 2대 대통령이 되었던 인물이다. 배신자로 찍힐 수 있는 부담은 물론이고, 자신의 평판과 가족의 생계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커다란 도박이었다.
학살 현장에서 과연 누가 ‘발포’라고 소리쳤는지, 그리고 사건 발생 전 성난 군중이 병사들을 먼저 도발하여 분위기를 폭발적으로 몰고 갔었는지가 심리의 핵심이었다. 애덤스는 배심원 앞에서 자기 일기장에 적어 두었던 글귀를 소리 높여 낭독했다. “만일 인간의 권리와 만고불변의 진리를 변호함으로써 독재 혹은 무지의 희생자를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면, 그 때문에 내가 설령 전 인류의 경멸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무고한 사람의 감사와 안도의 눈물만으로 나는 충분히 위로받았다 할 것이다.” 결국 병사 일곱이 석방되고 나머지 둘은 사형이 아닌 감형 선고를 받는 것으로 재판이 종결되었다. 애덤스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능력이 대중에게 각인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새삼 주목받은 사람이 있었다. 애덤스가 일기장에 적었던 글귀를 원래 집필했던 저자, 체사레 베카리아였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1764년 밀라노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전근대적인 범죄관과 형벌체계의 거대하고 어둡고 잔혹한 괴수와 맞서 싸운 이성의 상징이었다. 도덕적·종교적인 ‘죄’와 세속적인 ‘범죄’를 구분하고, 형벌의 목적을 새롭게 설정한 명저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1764년 밀라노에서 출간되었다. <범죄와 형벌> 덕분에 근대 범죄학과 형사정책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이 책을 ‘인류의 강령’이라 격찬하고 계몽주의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저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범죄와 형벌>은 전근대적인 범죄관과 형벌체계의 거대하고 어둡고 잔혹한 괴수와 맞서 싸운 이성의 상징이었다. 도덕적·종교적인 ‘죄’와 세속적인 ‘범죄’를 구분하고, 형벌의 목적을 완전히 새롭게 설정한 명저다. 억측과 예단과 종교적 편견으로 생사람을 잡던 야만적 행형제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역사적 사건이었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4년 8월 19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1849.html
영국 식민지였던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일어난 일이다. 본국 정부의 과세 정책에 분노한 시민들이 소요사태를 일으킨 와중에 영국군이 명령 없이 발포하여 민간인 5명이 죽고 여러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1770년의 보스턴 학살 사건이다. 여러 군인들이 재판정에 섰다. 사건의 성격상 아무도 이들을 변호하려 하지 않았는데 존 애덤스라는 젊은 변호사가 나섰다. 영국에 비판적이던 식민지의 전도유망한 법률가. 나중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미국의 2대 대통령이 되었던 인물이다. 배신자로 찍힐 수 있는 부담은 물론이고, 자신의 평판과 가족의 생계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커다란 도박이었다.
학살 현장에서 과연 누가 ‘발포’라고 소리쳤는지, 그리고 사건 발생 전 성난 군중이 병사들을 먼저 도발하여 분위기를 폭발적으로 몰고 갔었는지가 심리의 핵심이었다. 애덤스는 배심원 앞에서 자기 일기장에 적어 두었던 글귀를 소리 높여 낭독했다. “만일 인간의 권리와 만고불변의 진리를 변호함으로써 독재 혹은 무지의 희생자를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다면, 그 때문에 내가 설령 전 인류의 경멸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무고한 사람의 감사와 안도의 눈물만으로 나는 충분히 위로받았다 할 것이다.” 결국 병사 일곱이 석방되고 나머지 둘은 사형이 아닌 감형 선고를 받는 것으로 재판이 종결되었다. 애덤스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능력이 대중에게 각인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새삼 주목받은 사람이 있었다. 애덤스가 일기장에 적었던 글귀를 원래 집필했던 저자, 체사레 베카리아였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1764년 밀라노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전근대적인 범죄관과 형벌체계의 거대하고 어둡고 잔혹한 괴수와 맞서 싸운 이성의 상징이었다. 도덕적·종교적인 ‘죄’와 세속적인 ‘범죄’를 구분하고, 형벌의 목적을 새롭게 설정한 명저다.)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은 1764년 밀라노에서 출간되었다. <범죄와 형벌> 덕분에 근대 범죄학과 형사정책이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이 책을 ‘인류의 강령’이라 격찬하고 계몽주의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저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범죄와 형벌>은 전근대적인 범죄관과 형벌체계의 거대하고 어둡고 잔혹한 괴수와 맞서 싸운 이성의 상징이었다. 도덕적·종교적인 ‘죄’와 세속적인 ‘범죄’를 구분하고, 형벌의 목적을 완전히 새롭게 설정한 명저다. 억측과 예단과 종교적 편견으로 생사람을 잡던 야만적 행형제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역사적 사건이었다.
(후략)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4년 8월 19일)
기사 전문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1849.html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