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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수] 울림을, 작은 등대를 찾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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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10-06 14:16 조회29,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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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 펴낸 문학평론가 정홍수

볕 좋은 가을날 서교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도서출판 강을 찾았다. 평론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펴낸 정홍수 문학평론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며 책을 펴내고 문학비평으로 문학의 가능성을 타진해온 저자의 작업실에 들어섰다. 지상과 지하 사이, 반지층에 자리 잡은 소담한 공간이 퍽 인상적이었다. 지나치게 도드라지지도, 깊이 침잠하지도 않은 중간 지대의 그 공간이 문학과 세계 사이에서 민감한 촉수를 세우고 서 있는 평론가의 집으로 더없이 적합해 보였달까. 문학에 삶의 진실이 있다고 믿는, 문학을 통해서 삶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그와 마주앉았다. 뜨거운 커피가 식어갈수록 문학을 향한 그의 깊은 연정은 뭉근히 달아올랐다.


-<소설의 고독>(2008) 이후 두 번째 평론집이 세상에 나왔다.

=대부분 청탁을 받아서 쓴 글들이다. 그게 어느 정도 모였고 전 직장인 문학동네에서 제안을 해와 묶게 됐다. 책을 내고 보니 그냥 내가 살아온 걸 얘기했구나 싶다. 나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인데 그 세대로서의 회한이 책 곳곳에서 보이더라.



-책머리에서 밝혔듯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카페 뤼미에르>(2003)의 엔딩곡 가사 일부를 책 제목으로 가져왔다. 그 가사가 평론집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와 닿아 있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

=술 한잔하고 저 침대(그의 작업실 한편에 마련된 작은 소파 겸 침대)에서 잠을 자고 깬 새벽이었다. 문득 그 가사를 제목으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가사는 ‘흔들리는 사이로’였는데 문학동네 강병선 대표가 ‘로’ 자를 빼자더라. 그렇게 하고 보니 읽기도 더 수월했고 모양도 갖춰졌다. 책 4부에 영화평론은 아니지만 영화에 관한 글을 싣기도 했고, 또 그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어떤 시간들을 통과해왔구나 싶어 제목으로 정했다. 삶이 잘 안 풀린다 싶고 답답할 때면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느끼고 그 감동을 되새기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흔들리는 사이 푸른빛’은 그런 순간들이 아닐까. 우리가 삶의 순간순간을 다 누리고 살면 좋겠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못하잖나. 문학작품을 읽거나 영화를 마주하는 그 시간만큼은 그런 순간을 찾고 싶은 거다.



-2006년부터 올해까지 써온 글 중에서 어떤 기준으로 글을 추리고 엮은 건가.

=여기 나온 작품들은 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다. 비판적인 기준을 세워서 따져 들어가는 비평의 영역도 분명 중요하겠지만 나는 비판적으로 비평을 쓴 적이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선생님은 ‘비평은 교묘한 칭찬의 기술’이라고 말씀하셨다. 비평은 좋은 작품에 대한 반응이고 느낌이다. 그런 작품을 만났을 때 비평가도 할 말이 생기고 비평가 자신의 삶이나 실존적 고민이 글 안에 녹아들어갈 수 있다. 값싼 감흥이 아닌 제대로 된 울림을 주는 대목이 하나라도 있는 작품은 비평을 할 수 있다. 물론 작품에서 좋은 대목을 찾아내는 게 비평가의 일이지만. 좋은 작품은 반드시 그런 지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에필로그는 따로 붙이지 않았고 그 대신 홍상수 감독 영화에 대한 글로 책을 닫았다.

=머리말도 쓰기 싫어하는 사람이 에필로그는. (웃음) 일부러 홍상수 감독의 영화로 뒤를 맺었다. 그게 현재라고 생각했다. 그의 영화는 삶 자체를 던져놓고 같이 공감해보자고 말하는 것 같다. 결국 내가 문학을 통해 찾고자 한 것도 <다른나라에서>(2011)의 작은 등대 같은 걸 수 있겠다. ‘홍상수, 허우샤오시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물론 이 명단에 들어갈 작가들은 더 있겠지만 이 리스트를 보면서 ‘저 사람들이 먼저 가 있구나, 나도 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작은 등대가 돼준다.



-이번 평론집에는 미발표된 글이 딱 하나 실렸다. ‘기억의 육체-김소진, <자전거 도둑>’이다.

=청탁을 받고 쓴 글이었는데 사정상 발표를 못했다. 고민 끝에 넣었다. 소설가 김소진과 나는 서울대 82학번 동기다. 그 친구의 첫 소설집을 당시 내가 일하던 솔 출판사에서 냈고, 마지막 책을 강 출판사에서 냈다. 문학동네에서 일할 때 그의 전집이 기획되기도 했다. 내 등단 평론도 김소진에 관한 것이었다.(1996년 <문학사상>에 평론 ‘허벅지와 흰쥐 그리고 사실의 자리-김소진의 소설 쓰기’를 발표, 평론활동을 시작했다.-편집자) 내가 문학하는 걸 되게 좋아했고 내가 그걸 제대로 못하는 데 안타까워했던 사람이다. 글을 쓴다는 건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쓰는 건데 내 글을 정말 보여주고 싶은 친구가 김소진이다. 내게는 의미가 큰 친구다. 흔히 책이 나오면 누구에게 바친다고들 하는데 난 그게 쑥스럽더라. 근데 이번만큼은 김소진에 대해서 한마디를 하고 싶었다. 그걸 공개적으로 하기는 뭣해서 이렇게 글을 싣고, 책머리에 ‘한 친구가 있었다’고 넣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 테니까.

(후략)

정홍수 문학평론가
정지혜 씨네21 기자
(씨네21, 2014년 10월 6일)

기사 전문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8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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