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돈균] 리어카 - 현대 도시의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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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10-20 16:33 조회27,8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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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를 우리말사전에서는 `손수레`라고 순화해서 쓴다. 그러나 리어카는 `리어(rear)-카(car)`지 손수레가 아니다. 리어카는 수레를 흉내 낸 물건이 아니라 자동차(car)를 흉내 낸 물건이기 때문이다. 리어카는 원래 자동차의 사이드카를 흉내 내어 자전거 `뒤(rear)`에 매달아 쓰던 `차`였으며, 자전거에서 분리된 `차`가 사람이 끄는 용도로 바뀌어 널리 보급된 것은 겨우 1970년대의 일이다.
수레는 문명의 번성과 운명을 같이할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다. 어떤 기술문명사에서는 이집트와 고대 로마가 마야ㆍ잉카와 달랐던 결정적인 부분을 수레 사용의 유무와 관련 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한탄하는 현실 중에는 청나라처럼 수레를 널리 사용하지 못하는 조선의 열악한 도로 사정도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 임금이 왕위를 계승하면 요나라나 금나라의 임금으로부터 수레를 하사받기를 기다리는 내용이 왕조사 내내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다. 상국(上國)의 수레를 타고 선대의 묘에 제사 지내는 일이 공식적인 왕위 승인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지금 동네 골목과 길거리에서 보는 리어카는 옛날의 수레와는 사실 별개의 사물이다. 나무 바퀴가 아닌 타이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자동차처럼 `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끈다`. 그렇지만 소나 말 같은 다른 동물 동력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기계장치에 사용된 부품(타이어) 일부를 차용하는 점에서 현대적이지만, 원시적인 자연 동력원을 직접 사용한다는 모순에 이 사물의 특징이 있다. 타이어를 사용하지만 사람의 속도로 움직이는 리어카는 현대 도시의 이상한 화석이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04년 10월 17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4&no=1324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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