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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세월호의 아이들과 애도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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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11-12 18:22 조회29,2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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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충격적인 침몰이 있은 지 200일이 지났다. 자식이나 친족을 잃은 가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비통한 시간일 테지만 그와 함께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린 학생들이 생죽음을 당한 일은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국가의 관리체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였고 진상을 규명하여 이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세월호 사후, 우리 사회의 현주소 생생하게 드러내

  그러나 대통령 자신이 약속한 세월호 특별법은 그동안 여야가 밀고 당기는 가운데 당연히 진상조사위에 부여되어야 할 수사권과 기소권도 없는 불구의 형태로 타결되었다. 이 지리하고 혼란스러운 여야 합의의 과정에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이미 보여줄 것은 다 보여주었다. 대통령이 얼마나 유가족에게 매몰찼는지 정부 여당이 얼마나 표리부동하게 굴었는지 역사는 기억할 것이다. 워낙 권력의 속성이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권력자들의 비인간성과 천박함은 어느덧 상식이 무너진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생생하게 드러내준다.

  이렇게 국가의 책임을 뭉개고도 대통령과 정부는 이제 세월호는 잊자고 한다. 민생이 급하고 경제를 살려야 할 시기에 세월호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다. 사실 어떤 죽음이든 그에 대한 애도는 죽은 자를 보내고 삶으로 돌아오는 문화의 형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호의 경우처럼 사회문제와 결합되어 있는 죽음에 대한 애도에는 개인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는 해원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바로 사실을 규명하는 일이다. 이 진상규명을 훼방하고 흐리려는 권력이야말로 오히려 유족이 그리고 국민들이 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할 수 없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잊자고 하는 자들이 바로 그 죽음을 잊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시대의 극작가 소포클레스는 [안티고네]에서 통치자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장례를 지낸 후 옥중에서 자결한 한 여자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안티고네는 사랑하는 죽은 자를 애도해야 한다는 하늘의 법에 따라 반역자는 장례 지내서는 안된다는 권력의 법에 맞선다. 단원고 학부모들이 지금까지 갖은 고통과 수모를 견뎌내면서 줄기차게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애도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상규명의 요구는 부패와 금전주의의 망으로 묶여 있는 현재의 기성질서를 심문하는 것이기에, 권력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다. 자식들을 진정으로 애도하고 싶은 애절한 희원이 현실의 벽에 가로막힘으로써 평범한 학부모들은 어느새 우리 사회의 비극적 주인공이 되고 있다.

정치적 사건, 애도를 통한 망각이 가능하려면

  대통령과 정부는 또 일부 불순세력이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야말로 그리고 그에 대한 애도야말로 정치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사회적 문제로 야기된 억울한 죽음은 그 사회의 모순을 시정하는 과정에서만 제대로 애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유가족이 여야가 정치 현실의 명분을 내세워 타협한 법안을 두 번이나 거부한 것은 상호간 이해관계의 조절이라는 의미의 통상적이고 속물적인 정치로는 아이들의 한이 풀리지 않는다는 단심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굳어진 질서에 변화를 가져오는 진정한 정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애도를 통한 망각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야가 불충분하나마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하여 이제 현실 정치의 차원에서 소위 진상규명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이들에 대한 애도를 완성할 정도로 진실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별법 논의가 일단락된 것과 같은 시기에 예술가들이 “세월호 연장전”을 벌일 것을 선포하고 예술의 ‘연장’을 동원하여 세월호 문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환기하기로 한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예술가들의 싸움은 “잊지 않겠다”는 애초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자 아이들에 대한 애도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맺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연장전을 한다지만, 사실 삶과 사회를 갱신해나가는 그같은 활동에는 시한이 없다. 생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고통스런 죽음의 순간에 대한 기억은 우리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해나가라는 명령으로 우리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윤지관 덕성여대교수, 문학평론가
(다산포럼 제728호, 2014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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