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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지하철 플랫폼의 오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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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9-19 15:14 조회29,4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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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은 시각 은하철도999


여의도 증권사에 다니는 10년 차 직장인 37세 K의 집은 강동구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그에게 집 근처 역과 직장 근방 역 사이에는 스물세 개 정거장이 있다. 매일 아침 스물세 개, 왕복 마흔여섯 개의 정거장을 오가며 그는 10년 동안 회사를 다녔다. 일주일에 대략 200개 이상의 정거장, 한 달이면 800개를 오간 그의 정거장 수는 10년을 합산하면 10만 개에 이른다. 헉! 은하철도999를 탄 것도 아닌데 10만 개 정거장이라니. 혼자 쓸쓸한 명절을 보내던 37세의 K는 어느 날 자신이 오간 정거장 수를 문득 할일 없이 헤아려 보다가 놀란다. 그래도 그는 곧 다시 스스로를 위안 할 수 있었다. 그나마 갈아타지 않고 직장까지 직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서울의 동과 서를 쏜살 같이 횡단하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 K의 출근길, 아침 지하철이 목적지까지 달리는 시간은 평균 53분이다.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올라 게이트를 빠져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2분, 역사에서 회사 엘레베이터까지 다시 종종 걸음으로 5분. 그러므로 그가 생존을 위해 사수해야 할 마지노선은 오전 8시의 지하철 플랫폼이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중략) 가까스로 문이 닫히면, 으레 유리창에 밀착된 누군가의 얼굴과 대면하기 일쑤였다.”(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중에서)

 

기다리던 오전 8시의 ‘열차’가 들어온다. 일단 오전 8시의 열차는 그에게 ‘반갑다.’ 그러나 다시 그는 착잡해진다. 서울의 직장인 K에게 적어도 오전 8시는 “신체의 안전선”과 “삶의 안전선”이 분할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도 없고, 착잡한 마음을 사색으로 연결시킬 겨를도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하지만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문득 K는 예전에 서울 지하철 출근 시간 혼잡도에 대한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지하철 한 칸의 승차정원은 대략 160명, 좌석은 54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 출근 시간 강남역에 내리는 2호선 전철 한 칸의 승객수가 350명 정도라고 한다. 이 시각 나는 ‘사람’인가, 짐인가. 그가 몸을 싣는 지하철 5호선이 사정이 조금 낫더라도, K에게 매일 오전 8시는 이런 자문의 회귀가 불가피한 시간이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채널예스, 2014년 9월 16일)

기사 전문 http://ch.yes24.com/Article/View/2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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