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우리들의 일그러지지 않은 영웅’ 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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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10-06 14:22 조회28,3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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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장 선거 부정-비리 막자’ 개혁 열망 담은 위탁선거법
‘엄석대’ 농협과 농식품부, ‘못난 담임선생’ 국회가 합작… 기득권자에 유리하게 개악
농협과 위탁선거법 사태, 한국의 민주주의가 왜 겉돌고 우회하는지 잘 보여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문열의 걸작 소설이다. 주인공 엄석대는 교묘하고 대담한 부정행위로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모범생이다. 무능한 담임선생의 신임을 받아 교실을 지배하는 반장이다. 권모술수에 능란한 숨은 권력자의 전형이다.
그런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새 담임선생에 의해 반칙 행각이 드러나면서 ‘영웅’은 일그러지고, 왕국은 붕괴된다. 오래전에 읽은 이 소설이 생각난 것은, 우리가 성취한 민주화와 문명화를 깊이 회의(懷疑)하게 할 정도로, 너무 많은 야만(野蠻)의 왕국과 엄석대를 접하기 때문이다. 유병언과 ‘해피아’가 그중에 하나다.
최근에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을 통해 훨씬 센 엄석대를 알게 되었다. 이 법은 내년 3월 11일 지역농협(1012개), 축협(142개) 등 총 1400개 협동조합의 조합장 동시선거 관리를 위해 제정되었다. 최양부 전 대통령농림해양수석비서관의 분석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 지역농협의 총자산은 238조 원, 중앙회는 108조 원이다. 농협 빚 없는 농민은 거의 없기에, 채권자인 농협의 농민 및 농촌에 대한 영향력은 불문가지.
한편 지역농협은 8조 원의 무이자 지원금과 엄청난 자산을 운용하는 중앙회(장)에 종속되어 있다. 민주적 감시, 통제가 허술하면 농협도 농촌도 크고 작은 엄석대 왕국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 조합장만 한 알짜 자리가 없다. 억대 연봉에 판공비는 수억 원대다. 중앙회장은 그 10배다. 임직원들의 처우 역시 재벌기업 못지않다.
조합장 중 288명은 대통령도 부럽지 않다는 중앙회장 선거권자가 된다. 농협 운영 및 조합장 선거 과정에서 사생결단의 싸움과 부정, 비리는 필연이다. 바로 그래서 국민과 수백만 조합원의 이목을 집중시켜 좋은 사람도 뽑고, 공명선거도 실현하기 위해 동시선거와 위탁선거법을 만든 것이다. 법안은 올 2월 유대운 의원 등 15명이 발의해 4월 28일 국회 안행위 심사소위에서 원안수정 의결되어 5월 2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후략)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동아일보, 2014년 9월 30일)
기사 전문 http://news.donga.com/3/all/20140930/668247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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