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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 양당제 철벽과 안철수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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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3-24 16:38 조회20,5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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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중 양당제 국가라고 분류될 만한 나라들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그런 나라는 미국, 영국, 호주, 한국 등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사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친 복잡다단한 다원주의 사회에서 그 다양한 선호와 이익을 두 정당이 정치적으로 대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회경제적 갈등 문제가 다당제에 비해 양당제 국가에서 늘 심각한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양당제 국가에서는 끊임없이 다당제로의 전환 요구가 분출된다. 뉴질랜드는 그 요구가 관철되어 1990년대 후반 이후 다당제로의 전환에 성공했고, 영국도 조만간 그리될 가능성이 상당한 나라이다.

양당제를 지속시키는 핵심 기제는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다. 1등만 뽑는 선거이다 보니 전 지역구에 걸쳐 1등감 후보를 양산해낼 수 있는 능력과 조직을 갖추기 위해 이념과 정책기조 혹은 지지기반 등을 엷게나마 공유할 수 있는 정치세력들은 하나의 정당으로 뭉쳐 자신들의 몸집을 불려놓는다. 마찬가지의 이유와 방식으로 다른 편에서도 거대 정당이 형성되고, 따라서 정당정치는 양대 정당 간의 진영대결 구도로 전개된다. 영국과 뉴질랜드에서의 다당제 전환 압력이 공히 소선거구제 대신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의 도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가해진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두 나라 모두에서 그 압력의 주체는 제3정당(들)이었다. 그들이 압력을 가하기 시작하고 뒤이어 양대 정당 중의 진보파, 더 정확히는 그 진보파 정당 내부의 개혁파 세력들이 그들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선거제도개혁 압력이 가해졌다.

한국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 듯했다. 안철수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비례대표제 강화를 정치개혁 공약의 하나로 내세웠다. 그 후엔 지역기반 양대 정당들에 의한 기득권 체제 타파와 다당제의 발전을 꾸준히 주창했다. 그리고 상당 수준의 안정적 지지율에 힘입어 새정치연합이라는 신당 창당을 추진했다. 다당제 확립의 전제 조건인 수준 높은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유력한 제3정당의 출현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막판에 다른 길을 택했다. 송호창 의원의 표현대로라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양당 기득권 체제의 한 축인 민주당은 그 독과점 틀의 수혜자이자 수호자인 사람들로 득실거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로 그 틀을 깨기 위해 그 위험한 곳으로 들어갔다는 설명인 듯한데, 그렇다면 안 의원은 그야말로 비장한 결단을 내린 셈이다.

그는 민주당과의 통합 결정을 “고독하게”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향한 그 비장한 의지를 굽히지 않는 한 그는 그 굴속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오히려 고독함에서 탈출할 수 있을 듯하다. 그 안에는 이미 이른바 ‘손·정·천’(손학규, 정동영, 천정배) 등의 거장 개혁파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발전을 역설하며, 그 전제조건으로 비례대표제의 획기적 강화를 통한 다당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3월19일에는 새정치비전위원회가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증대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라고 요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책임지고 수행해나갈 정치혁신안을 국민의 시각에서 추출한다는 목적으로 구성된 동 위원회가 그 첫 번째 개혁안으로 비례성 제고를 내놓았다는 것은 굴 바깥에도 그 내부의 구조적 변화를 염원하는 ‘동지’들이 꽤 많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위원회는 ‘시민회의’ 구성을 통해 비례대표제 개혁을 추진하라고 제안했다. 그것이 받아들여져 1년간 100명의 시민들이 최적의 비례대표제 설계를 위해 강연회, 공청회, 토론회 등을 매주 열어 집단지성을 모아갈 경우, 그 과정에서 비례대표제가 공론화되며 시민동지들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갈 수도 있다. 이는 안철수 의원의 선택이 계기가 되어 ‘손·정·천’과 같은 개혁파 정치가들, 학자와 전문가들, 그리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대규모 협력체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양당제의 철벽도 결국엔 깨질 수 있다. 뉴질랜드와 영국 등과는 다른, 우리 방식에 의한 다당제 발전은, 희망컨대, 그렇게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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