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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서른 살, 서럽고 낯설고 설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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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10-06 14:11 조회29,7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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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럽거나 설익거나 낯설거나


불가리아의 언어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말의 본질은 음성, 즉 소릿값이다. 소릿값에는 문화의 세계 속에서 말의 의미가 분화되어 자리 잡히기 전 ‘질감’이 존재한다. 소리에는 물질성의 차원이 있다는 말이며, 그 물질성에 문화가 분화시키지 않아도 이미 내재해 있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문득 ‘서른 살’이라는 단어를 발음해 보다가, 이 단어의 소릿값이야말로 이상한 질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 살’은 ‘서른’과 ‘살’이라는 두 단어를 합친 복합어지만, 이 두 단어의 결합은 좀 특이한 인상을 자아낸다. 


‘서른’ ‘서른’ ‘서른’……이라고 입으로 몇 번 계속 소리 내어 보자. 단지 30이라는 수가 아니라 ‘서러운’이라고도 들리고, 밥이 ‘설다’(설익다)고 할 때 ‘설은’으로도 들리지 않는가. 또 어떻게 들어보면 ‘낯설다’ 할 때 ‘(낯)설은’으로도 들린다. 말놀이 같지만, 저 언어철학적 통찰에 따르면 ‘서른’의 의미에는 부지불식간에 이 소릿값 모두가 반영되어 있다.


‘살’(나이歲)이라는 단어와 결합된 ‘서른 살’은 ‘서른’이라는 소릿값의 물질적 복합성을 특히 잘 보존하는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서른’과 결합되면서, ‘살’이라는 말조차도 ‘나이’만이 아니라 몸을 뜻하는 단어인 ‘살’(flesh)처럼 들린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서른 살’은 ‘서러운 몸’이거나 ‘설익은 몸’이거나 ‘낯선 몸’이 된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가수 김광석이 죽은 지 20년 즈음 됐다. 갓 서른 살이 넘어 요절한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고 해봐야 쉰 살 남짓이다. 인생의 중년을 살아보지 못하고 죽은 그는 ‘서른 살’을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시간, “매일 이별하며” 사는 시간으로 체험했다. 이 시간 체험의 이미지는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드러난다. 서른 살은 내 몸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열망이 몸 바깥으로 한숨처럼 허탈하게 빠져나가는 경험이며, 강렬하게 체험되었으나 곧 실체 없이 허공에 사라질 덧없는 연기에 관련된 이미지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서른 살이란 “떠나간 내 사랑”의 “기억”의 시간이었다. 이 상실된 사랑 자체가 서른 살이라는 ‘청춘’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에게 서른 살은 ‘서러운 몸’을 사는 시간이 된다. 


서른 살 즈음에 우리는 한 번쯤 인생의 나침반을 돌려놓는 사랑과 제 몸의 일부를 상실하는 듯한 이별을 겪는다. 하지만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저 감수성에서 특별히 눈여겨볼 것은, 이별이 일회적인 불행이 아니라 “매일” 지속되고 반복되는 삶의 시간으로 추체험된다는 사실이다. “조금씩 잊혀져간다”고 말하지만, 노래하는 동안 기억은 지속된다. 이것은 무감각이 아니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노래의 역설은 노래 속에서 사랑의 시간이 반복되어 재생되고, 그런 의미에서 사랑의 시간을 여전히 살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한용운 ?님의 침묵」)라는 시구가 저와 크게 다른 뜻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요즘 세태에서는 ‘쿨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멋진 젊은이의 한 페르소나처럼 되어 있으나, 상처를 사랑의 시간으로 되돌리며 다시 사는 ‘서른 즈음에’의 기억의 작동 방식이야말로 그 시간이 지닌 진정한 능력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인생의 시간도 ‘서른 살’이다.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채널예스, 2014년 9월 30일)

기사 전문 http://ch.yes24.com/Article/View/26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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