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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검은색 가죽부츠 - 여자의 부츠는 어디를 걷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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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11-24 14:15 조회29,5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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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미술관 입구에서 한 관람객 여자를 보았다. 키가 크고 반듯한 인상을 지닌 여자였는데, 목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롱부츠를 신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평범한 그의 복장이 미술관에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그 가죽부츠 때문이다. 발과 다리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롱부츠의 존재감은 신체의 다른 부위를 지우고 부츠만 드러나게 했다. 신발 자체가 독립되어 있는 다리처럼 보여서 그 미술관에 전시된 고대의 유품 같았다.

그러나 시각적인 인상과 달리 이상한 촉각 경험을 하게 됐다. 검은색 롱부츠를 보자마자 내 정강이에 ‘뜨끔’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강이가 아려서 나도 모르게 아주 잠깐 손으로 정강이를 짚어 보았던 듯도 하다. 가죽부츠가 건드린 것은 군대의 ‘워커(walker)’와 관련된 내 무의식이었다. 겨울에 입대를 한 나는 아직도 이맘때면 신체는 보이지 않고 검은색 워커만 ‘저벅저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밤샘 행군을 하는 꿈을 꾸곤 한다. 그 꿈에서 한 워커의 정강이는 다른 워커에 채인다.

이 사물은 그런 점에서 확실히 ‘밀리터리룩’에 속한다. 관념 이전에 감각을 발동시키니 말이다. 하지만 이 감각의 발동이 한국적 특수성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부츠의 형상에는 보편적 남성 문명사에 깃든 호전성이 투여되어 있다. 인간의 피부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다른 짐승의 가죽은 그 목적과는 달리 대체로 시각적으로는 방어적이기보다는 공격적이지 않은가.
(후략)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4년 11월 21일)

기사 전문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4&no=145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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