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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연]수능 킬러 문항 논란으로 본 한중 능력주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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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7-06 12:20 조회3,1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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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문화프리즘] 수능 킬러 문항 논란으로 본 한중 능력주의 차이점
▲ 수능 킬러문항에 관한 논란에서 근본 문제는 한 번의 시험으로 줄을 세우고 대입 당락을 결정하는 수능제도 자체에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가? 사진은 2022년 6월7일 중국 수능 첫 날 문제를 복기하는 베이징 수험생들의 모습. <연합뉴스>

수능 킬러 문항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정부는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한 킬러 문항을 핀셋으로 들어내겠다고 한다. 수험생 특히 상위권 수험생은 그렇게 되면 변별력이 없어질까 우려한다. 

그런데 근본 문제는 킬러 문항이 아니라 한 가지 시험문제로 한 줄을 세우고 오직 이것으로만 대입 당락을 결정하는 수능제도 자체에 있다.

우리는 왜 이런 인재 선발 방식을 바꾸지 못하는가? 오랜 역사적, 문화적 전통 때문이다. 

과거를 중국에서 도입한 뒤로 우리는 이렇게 인재를 가리고 선발해 왔다. 과거라는 인재선발 형태를 유지하는 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예전, 명나라나 청나라 때도 지금 킬러 문항과 같은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과거에 응시하는 유생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고 응시자도 많아지는 데 뽑는 인원은 제한돼 있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졌다. 변별력을 두기가 점점 어려워진 거다. 그래서 이제 기괴한 문체가 등장한다. 팔고문이라는 기괴한 문체 형식을 두고 이 형식에 맞추어 글을 쓰도록 한 것이다. 

나라를 이끌 최고 인재를 뽑는데 이런 기괴한 형식주의라니. 지금 보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많은 인재를 한 줄로 세우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국어와 수학만으로 상위권 변별력을 내야 하는 지금 우리 수능에서 킬러 문항이 등장할 수밖에 없듯이. 

중국도 우리처럼 수능으로 대입을 치른다. 1300만 명가량이 이틀 혹은 사흘에 걸쳐 인생을 건 시험을 본다. 중국도 우리처럼 과거제로 인재를 선발하던 영향이 남아 있어서 이렇게 대학입시가 진행된다.

중국이나 우리나 과거시험 방식을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것은 같다. 이렇게 과거를 통해 실력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은 과거에는 정말 선진적이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서구보다 훨씬 앞선 제도라고 감탄했다. 

[한중 문화프리즘] 수능 킬러 문항 논란으로 본 한중 능력주의 차이점
▲ 수능 시험의 원조는 과거제다. 집안이나 배경이 아니라 능력을 기준으로 나라를 이끌고 책임지는 과거라는 시험제도를 중국은 어떤 동기로 도입했고, 우리는 왜 이 제도를 수입했는가? 사진은 2017년 제주도에서 열린 과거시험 재현 행사. <연합뉴스>

수능 시험의 원조는 과거제다. 그런데 막스 베버가 감탄한 과거라는 시험제도를 중국은 어떤 동기로 도입했고 우리는 왜 이 제도를 수입했을까?  

막스 베버가 놀랐던 것은 과거제가 집안이나 배경이 아니라 능력을 기준으로 나라를 이끌고 책임지는 고위 관료를 뽑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과거제와 같은 관료 선발 방식은 당시 서구에 없었다. 서구 대부분 국가는 나라를 이끌어 가는 자리를 귀족계급이 대대로 세습했다. 

과거제 도입전까지는 중국도 그랬다. 귀족들이 자기들끼리 자리를 나누어 갖고 아들, 손자, 증손자에게 대대로 세습했다. 능력이 있건 말건 상관없이 '네 아버지가 누구냐?' 이 한 가지 기준으로 권력은 대대로 세습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황제에 오른 수나라 문제는 귀족 권력을 깨지 않으면 자기는 허수아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집안을 보는 게 아니라 능력, 다시 말해 시험 성적순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과거제도를 도입했다. 

이렇게 과거제는 한편으로는 황제 권력 강화를 위해 귀족의 세습적 기득권을 타파하려는 의도로, 다른 한편으로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기 위해서 도입됐다. 

그렇게 시작된 과거제는 중국에서 기득권을 대대손손 유전하는 귀족의 기득권을 해체하는 데 기여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과거제가 정착하는 데는 3백년 가까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과거제는 수나라 때 시작됐지만 귀족 권력 해체라는 목적은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에 가서야 어느 정도 달성됐다. 기득권 권력 해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과거제 정착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과거제 도입에 이어 당나라 말에 전란이 잇따르면서 귀족 계급이 해체된다. 중국은 송나라에 이르러 누구나 공부만 잘하면 낮에 농사를 짓다가가도 과거에 급제해 조정에 출사할 수 있는 사회가 됐다. 신분제가 해체된 근대 시민사회 같은 사회가 송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제 신분을 세습하는 사람은 오직 황제 한 사람뿐이었다. 황제 외에는 누구도 지위를 세습할 수 없었다. 기회는 평등하지만 능력에 따른 결과의 평등은 보장하지 않는, 무서운 능력주의 사회가 등장했다.

능력주의가 중국의 문화적, 정치적 유전자가 된 것은 과거제가 정착하면서다. 오늘날과 같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맹아는 송나라 때 태동됐다.

중국이 사회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중국인들 가치관과 심성은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자본주의에 가깝고 중국 사람들이 뼛속부터 자본주의 기질을 지닌 역사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과거제를 도입한 조선은 왜 중국처럼 바뀌지 않았는가? 조선의 과거제와 중국의 과거제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양반제라는 세습적 신분제도를 유지한 채 과거제를 도입했다. 또 과거는 규칙적으로 시행되는 식년시 외에 별시처럼 갑자기 시행되는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일하면서 공부하는 농민 자식보다는 공부만 하고 게다가 독선생까지 있는 양반 자식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중국에서는 과거제 도입으로 세습적 신분제도가 해체됐는데 조선에서는 양반이라는 세습적 신분제를 그대로 두고서 과거제를 시행하다 보니 양반이라는 세습적 권력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능력주의 상징인 과거제가 조선에서는 기득권층에 가로막혀 기득권 강화의 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능력주의는 빛과 어둠을 동전의 양면처럼 지니고 있다. 능력에 따라 정당한 대우 받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없거나 기회가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약화시킨다는 단점도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많은 젊은이들이 능력주의를 외친다. 능력주의조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 킬러 문항 논란에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능력주의의 상징인 현대판 과거시험, 수능이 지금 우리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그 여부다. 

과거제가 중국에서는 세습적인 특권층 해체에 기여했지만 조선에서는 특권층 강화를 위해 작동한 역사적 경험을 되새겨 보면서, 수능이라는 시험이 우리 사회가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굴러가도록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욱연 서강대 교수 

비지니스포스트 2023년 7월 9일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32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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