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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일]유네스코 등재는 제주 월정리에 무슨 의미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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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3-07-10 17:52 조회2,9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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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월정리가 제주에 묻다](3)

한적한 바닷가 마을인 줄 알았던 제주 구좌읍 월정리가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제주도와 월정리마을회가 ‘갈등 종결’ 대타협을 통해 6년째 멈춰섰던 증설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월정리 문제는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지금의 월정리는 제주의 어떤 역사적 장면이고 사회적 단면인가.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떠한 과제가 남아있는가. 월정리의 지난 시간이 제주도의 미래에 건네는 물음은 무엇인가. 현장을 지켜봤던 실천적 학자가 보내온 글을 7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글]

<글 쓰는 순서>
① 월정리 문제는 왜 복잡한가?
② 월정리 싸움은 님비인가?
③ 유네스코 등재는 월정리에 무슨 의미였나?
④ 지하의 동굴은 어떻게 지상의 정치를 일으켰나?
⑤ 바다의 값은 얼마이며 바다의 주인은 누구인가?
⑥ 해녀들은 어떻게 운동의 주역이 되었는가?
⑦ 월정리발 분산화론은 제주도의 미래에 무엇을 말하는가?
 

월정리의 커먼즈

한국어에서 마을은 물을 뜻하는 ᄆᆞᆯ에서 비롯된 말이다. 마을을 의미하는 한자 동(洞)은 같은 물을 마시는 곳, 촌(村)은 나무를 일정하게 심어 놓은 땅, 리(里)는 구획을 지어 밭을 일궈놓은 땅을 뜻한다. 이처럼 예로부터 마을은 땅과 물 같은 자연 자원에 의지해 형성되고 유지되는 삶터를 뜻했다. 여기서 그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존과 생활을 위해 관리하며 활용하는 자원을 커먼즈(commons, 공동자원)라고 부른다.

제주도는 예로부터 커먼즈의 보존과 활용이 두드러졌다. 화산 폭발로 한복판에 한라산이 솟아 있고, 도처에 368개의 오름이 자리한 제주도에서는 공동목장, 공동어장, 마을숲 같은 커먼즈를 마을 단위로 관리해온 역사가 두텁게 존재할 뿐 아니라 일부는 현재도 기능하고 있다. 월정리에서는 공동어장이 함께 활용하고 관리하는 주요한 커먼즈이다. 강만익에 따르면 월정리에서 어업조합이 설립된 시점은 1916년으로 제주도에서 가장 빨랐다.(강만익, 「일제강점기 제주도어업조합 설립과 운영」, 『제주도연구』 58, 2022.)

월정리에는 또다른 커먼즈도 존재한다. 바로 용천동굴이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용천동굴은 유네스코에 따르면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공유하고 지속가능하게 보전해야 하는 자산이다. 이처럼 월정리에는 두 가지 커먼즈, 즉 지역적 커먼즈(local commons)인 공동어장과 지구적 커먼즈(global commons)인 용천동굴이 존재하는데, 이 둘의 관계가 동부하수처리장을 매개로 얽히게 되며 월정리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유네스코의 섬을 실현해준 용천동굴

월정리의 땅밑에 있는 용천동굴은 어떻게 인류의 공통 자산이 되었는가.

제주도에서는 내세울 만한 유산을 찾아서 유네스코에 등재함으로써 제주도의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가 반복되어 왔다. 백영경이 짚었듯이 제주도만이 아니라 각 국가나 지역이 세계유산 발굴에 열을 올리는 이유 중 하나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으면 지역의 가치가 올라가 관광 부흥이나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백영경, 「공동체적인 삶과 ‘유산’(Heritage)의 의미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 제주 마을의 사례를 중심으로」, 『문화와융합』 41(2), 2019.)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1차 산업인 농축산업과 3차 산업인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제주도는 유네스코 등재 경쟁에서 단연 선두주자이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2002), 세계자연유산 등재(2007), 세계지질공원 인증(2010)을 받았는데,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3대 환경보호제도’에 모두 이름을 올린 사례는 세계적으로 제주도가 유일하다. 2011년부터 정부와 제주도정은 ‘유네스코 3관왕’, ‘유네스코의 섬’을 브랜드로 삼아 관광객을 적극 유치했으며, 이는 2010년대 제주도 관광 부흥의 핵심 동력이었다. 나아가 ‘유네스코의 섬’이라는 브랜드는 청정지역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해 제주산 농산물과 수산물의 가치를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그 중에서 제주도의 국제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특히 효과가 컸던 것은 세계자연유산이다. 세계자연유산은 자연의 기념물로서 심미적 또는 과학적 관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지역이나 자연유적지로서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의 기준을 충족해야 등재될 수 있다. 제주도는 신생대 후기부터 역사 시대까지 활발한 화산 활동에 의해 다양한 화산지형이 발달해 있으며, 지하에는 약 160여 개의 용암동굴이 확인되었다. 이들 중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동굴의 규모와 특징,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6월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거기에 속한 용천동굴은 2005년에 전신주 교체 작업 도중에 발견되었는데, 정부와 제주도정이 제주도 자연 기념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던 시기에 나타나 핵심 소재가 되었다.

용천동굴 내부의 모습/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용천동굴 내부의 모습/출처=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땅도 잃고”

용천동굴은 세계자연유산이 되자 체계적인 보호를 받게 되었다. 한국정부는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이라는 국제적 협약을 준수해야 하며, 국내에서는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 같은 법적 보호 장치를 두고, 해당 지역에는 핵심구역과 완충구역을 설정했다.

월정리 주민들이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을 반대할 때 주요 논거이자, 그들의 반대 주장이 님비라는 프레임을 넘어서 제주시민사회에서 지지를 얻었던 이유 중 하나도 용천동굴을 비롯한 월정리 용암동굴의 유네스코 등재 사실이었다. 월정리 비대위와 해녀회는 공동어장(바다)의 오염을 막기 위한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지상) 반대 운동에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용암동굴(지하)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용천동굴이 지구적 커먼즈가 된 사실이 월정리의 지역적 커먼즈인 공동어장에 미친 영향을 실로 복합적하다. 월정리 주민들에게 용천동굴의 유네스코 등재는 생활상의 역설을 야기했다. 하수처리장 증설 반대 시위에서 월정리 주민이 든 피켓에 적힌 “땅도 잃고 바다도 잃고”라는 문장은 그 이중의 피해를 압축하고 있다. “바다도 잃고”가 하수처리장의 가동과 증설로 바다가 오염되어 공동어장의 가치가 저하된 일을 가리킨다면, “땅도 잃고”는 용천동굴의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따른 결과였다.

월정리 농지

월정리 농지

월정리는 반농반어의 마을이다. 해녀들도 물질을 하지 않을 때는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사에 들이는 노동 시간이 물질 쪽보다 길다. 월정리의 주된 경작물은 당근, 양파, 쪽파인데, 이는 이곳이 용암지대인 까닭에 표토가 얇지만 북서풍에 의해 해안가 모래가 땅을 덮고 있고, 이들 작물이 모래밭에서도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용천동굴의 유네스코 등재로 월정리 전체 면적의 2/3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토지 사용에 제약이 생겼고, 동굴 핵심구역에 위치한 밭(월정리 밭의 1/3 가량)이 국가나 지방정부에 강제매입되었다. 월정리 전체 300여 가구 중 50가구 이상이 제주도에 임차료를 내고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다가 월정리 주민들의 하수처리장 증설 반대운동이 고조되던 2022년 말, 임대해서 쓰던 밭에서는 ‘경작 금지’를 통보받았다. 농사를 지으면 질소질 비료가 물과 함께 동굴로 흘러들어가 동굴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처럼 지역의 자원이 세계유산 등으로 등재되어 기존의 이용자가 내밀려나는 사태를 ‘유산의 인클로저(enclosure, 울타리 치기)라고 한다. 보통은 문화재나 유적지로 인해 해당 마을이 관광지화되어 호텔 등이 들어서고 물가가 앙등해 기존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둥지 내몰림)의 양상이 많은데, 월정리에서는 거기서 계속 살아가는 농민들이 농토를 못 쓰게 되는 식이었다.

동부하수처리장 인근 밭의 무단 경작 금지 안내 표지판

동부하수처리장 인근 밭의 무단 경작 금지 안내 표지판

“바다도 잃고”

한편 유네스코 등재로 ‘유네스코의 섬’ 제주도가 관광지로 각광을 받으며 관광객들이 가파르게 증가하자 처리해야 할 하수의 양도 늘어났다. 동부하수처리장이 있는 월정리의 공동어장은 점차 피폐해졌다. 월정리는 토양이 비옥하지 못해 기를 수 있는 농작물이 제한되기 때문에 과거부터 어업이 중요한 생업이었다. 그런데 유네스코 등재로 마을에서 농업이 차질을 빚게 되고, 하수처리장 가동에 따른 바다 상태의 악화로 어업도 곤란에 처한 것이다.

다만 어업 피해는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 2017년 제2차 증설 계획이 수립되었을 때 제주도정에서 월정리 어촌계 측에 어업 피해를 확인해 보상하겠다고 했지만, 피해 조사를 수용하면 증설 계획을 추인하는 것처럼 비쳐질까봐 해녀들이 거부했다. 따라서 어업 피해는 물질을 하는 해녀들의 증언을 통해 추측해야 하는 실정이다.

월정리 앞바다

월정리 앞바다

• 채취량 변화 : 박영순(물질 경력 50년 이상, 73세). “2014년 증설 전엔 한번 물에 들어가면 성게 35㎏ 정도는 땄다. 지금은 1㎏ 정도 딸까? 소라는 아예 없다. 옆 마을에선 지금 다들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데, 우리는 그 흔한 우뭇가사리도 없다.”

• 소득 변화 : 김영숙(해녀회 회장, 70세). “이전에는 물질 해서 하루 10만 원(약 90달러)은 벌었는데, 이제는 3만 원도 못 벌어. 평생 물질로 먹고 살아온 해녀들이 생계가 막막해지니까 찬 아스팔트 바닥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고 있는 거야.”

• 바다 생태계 변화 : 윤영옥(물질 경력 40년, 65세). “소라·성게 등이 붙어 사는 바닷 속 딱딱했던 돌들이 지금은 다 삭아서 푸석푸석해졌다. 심지어 썩은 소라들도 있어. 초록색·붉은색이었던 바다 밑이 석회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잿빛이 돼버렸어.”

• 물질 상태 변화 : 김은아(물질 경력 6년, 막내 해녀, 47세)의 증언. “바다에서 악취도 나고 두통도 심했다. 물질을 한 뒤에 몸이 가려워지는 등 피부질환도 생겼다.(김규남, “우리도 껍데기 뿐인 소라될라 하수처리장 ‘몸살’ 앓는 월정 바다”, 『한겨레』 2023.05.27.와 박영순 인터뷰2023.05.11.에서)

특히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동부하수처리장의 처리 용량을 초과해 제대로 정화되지 않은 하수가 대량으로 바다로 방류되고 있다. 방류수에 오염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하수처리장을 거쳐서 바다로 흘러나가는 대량의 방류수는 단물로서 바다의 염도와 온도를 변화시켜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지구적 커먼즈, 해녀와 바다

“문화재 때문에 땅에서 쫓겨났는데 지금 우리가 그 문화재를 지키고 있다.”

월정리 해녀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것은 거대한 용천동굴이 국가 지정 문화재, 나아가 유네스코 등재 유산으로 지정되며 경작할 수 있는 마을 내 농토는 줄었지만, 이제 용천동굴의 존재와 그것이 보호 대상이라는 조건을 하수처리장 증설 반대의 핵심적 논거로 삼아 공동어장을 지키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월정리에는 또 하나의 지구적 커먼즈가 존재한다. 바로 해녀 문화이다. 제주도 해녀 문화는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고, 문화재보호법 상의 국가무형문화재에 속해 있으며, 2016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녀들은 공기 공급 장치를 착용하지 않고 수심 10m까지 잠수해 조개류나 해조류를 채취한다. 이를 물질이라 한다. 해녀들의 작업 도구는 매우 기본적인 것으로 잠수복, 물안경, 물갈퀴 그리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호미, 해산물을 담는 그물바구니와 물속에서 오래 버틸 수 있도록 무게를 잡아주는 납벨트 등이 전부이다. 그것들을 갖추고 보통 조수가 적은 때에 맞추어 물질에 나서면 한 번에 서너시간씩 작업한다. 다른 해녀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거리에서 작업하며 서로를 지켜준다.

해녀들은 바다 속 암초와 해산물의 서식처를 포함한 바다에 관한 인지적 지도를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으며, 해당 지역의 조류와 바람에 대한 경험적 지식 또한 풍부하다. 이러한 지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된 지식이자, 전수되는 지식이다. 해녀들은 또한 영등굿, 잠수굿 등의 의례와 해녀의 노래를 만들어 오랜 세대를 거쳐 그들의 공동체 내에서 전승해 왔다.

이렇게 발전시킨 해녀 문화. 그것은 해녀박물관에 박제된 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해녀 문화는 해녀의 존재와 함께하며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제주도정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도내에서 활동하는 해녀는 총 3226명인데, 50∼60대가 1047명(32.5%), 70세 이상이 2090명(64.8%)으로 대부분을 차지해 해녀 고령화 현상이 뚜렷하다.(고성식, “97년생 25살 '제주 막내 해녀'…문화유산 명맥 잇는다”, 『매일경제』 2023.02.23.) 해녀 문화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정부와 제주도정이 해녀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는 것은 해녀 문화를 제주도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이전에 인류의 자산으로서 지키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해녀는 그 자신이 지키려는 바다와 함께 보호되어야 한다. 해녀를 보호하려면, 해녀들이 지키려는 바다를 보호해야 한다.


윤여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제주의 소리 2023년 6월 29일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416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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