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베를린의 ‘역 민영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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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3-24 16:07 조회20,4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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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지구를 반바퀴 이상 돌면서 이산화탄소를 6000㎏ 쏟아냈고, 그 대가로 베를린 등지의 에너지전환 현장을 둘러보았다. 전체 전기소비의 25%가 재생가능 전기로 공급되는 독일은 지금 꽤 까다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재생가능 전기에 제공되던 판매 특혜는 그 비중이 4분의 1로 증가함에 따라 큰 비용을 유발했고 결국 지속이 어렵게 되었다. 그래도 2050년까지 달성하기로 되어 있는 에너지전환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비용부담을 낮추면서도 재생가능 전기의 비율을 계속 높여가야 한다. 이 어려운 과제를 앞에 두고도 그 가능성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설명하는 경제에너지부의 젊은 공무원들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더 인상적이었던 곳은 베를린 도시청소공사였다. 1990년대 말 베를린은 큰 재정위기를 맞았다. 통일 후 연방정부에서 오던 지원금이 끊어졌고, 산업체들도 대부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 세수가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시정부는 위기를 민영화로 해결하려 했다. 당시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민영화가 만능인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으니 큰 저항도 없었다. 시정부는 먼저 전력공사와 가스공사를 팔았다. 수도공사도 일부 민영화했다. 다음 민영화 후보는 1만명에 달하는 직원이 연간 7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도시청소공사였다. 정부의 민영화 계획이 발표되자 여러 사기업이 관심을 보였다. 민영화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물론 공사 임직원들은 민영화를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냥 반대만 한 것이 아니라 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냈고, 그것을 들고 시정부와 협상을 벌여서 결국 민영화를 저지했다.
그들이 시정부에 제안한 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정부에서 도시청소공사의 매각을 통해서 얻으려는 액수의 돈을 공사에서 마련해서 내놓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영화를 통한 경영효율 개선을 공사 상태에서도 실현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협상을 통해서 그들은 시정부에 매년 지불해야 하는 이익배당금 15년치에 해당하는 약 6000억원을 한꺼번에 제공하고 청소요금을 10%가량 낮추는 대가로 공사형태를 유지한다는 합의를 끌어냈다. 그 후 공사에서는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 몇년에 걸친 단계적 감원을 통해 직원을 2000명가량 줄이고 시민들에게 부과하는 청소요금도 상당히 낮추었다. 그렇다고 아웃소싱을 하거나 비정규직을 도입하지는 않았다. 모든 직원은 정규직으로 65세 정년이 될 때까지 일할 수 있고, 수입이 줄었어도 매년 100억원 정도 흑자가 난다.
공사에서는 쓰레기를 매립하지 않는다. 재활용, 소각, 발효를 통해서 쓰레기를 처리한다. 음식물 등의 유기질 쓰레기를 발효시켜 생산된 가스는 공사소유 쓰레기 수거차량 150대를 운행하는 데 사용된다. 소각시설에서는 열과 증기를 만들어 지역난방과 전기생산에 사용한다. 소각 후 남는 것 중에서 중금속 등 유해물질은 특수처리하고 철이나 구리 등의 금속은 판매한다. 소각시설에서 배기가스가 나오지만 그 속의 유해기체 농도는 기준치를 크게 밑돈다.
베를린 도시청소공사가 내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시설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에도 첨단의 쓰레기 소각시설은 곳곳에 있다. 그것보다는 민영화 저지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임직원들이 스스로 정부에서 받아들일 만한 안을 찾아내어 제시하고, 정부에서도 민영화만을 고집하면서 직원들을 무시하고 억누르지 않았다는 것이 새롭게 보였던 것이다. 베를린에서는 민영화 바람이 물러가고, 오히려 민영화를 되돌리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영화되었던 수도공사는 시가 다시 사들였다. 대다수 시민들의 요구를 시가 수용한 것이다. 베를린의 사례는 경영효율을 높인다는 구실을 내세워 틈만 나면 민영화를 밀어붙이려는 정부와 주로 저항을 통해 민영화를 저지하려는 노동조합이 대치하는 형국인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꽤 있는 것 같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4.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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