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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채플힐의 공짜버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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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4-09 14:14 조회21,2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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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며 내건 무상버스 공약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이유는 이 공약이 교통 공공성을 실현할 최적의 방안인지, 그리고 현실성이 충분한지에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인데, 이런 점을 잘 살피는 것이 언론기관의 기능이다. 하지만 무상버스 공약에 대한 보수신문과 종편의 보도나 논평 밑에는 비상식적인 적개심이 흐르고 있는 듯하다. 지난달 21일 <동아일보> 최영해 논설위원의 칼럼, “김상곤 공짜 버스의 종말”도 그런 예의 하나다.

칼럼의 요지는 제목에서 보듯이 “공짜버스” 공약은 가당치도 않다는 것인데, 최 위원이 이런 주장을 사실에 입각해 논증하는 데 주력했다면 내가 따로 그의 글을 꼬집어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의 글이 논박 없이 그냥 유통되게 두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든 것은 그가 김상곤 후보 비판을 위해 다른 나라의 멀쩡한 제도마저 헐뜯기 때문이다.


칼럼은 몇해 전 노스캐롤라이나대(UNC) 저널리즘 스쿨 연수 때 그가 겪은 일에서 시작된다. 그 시절 그는 ‘유엔시’가 자리잡고 있는 채플힐의 시영 “공짜 버스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것이다. 나 역시 몇해 전 ‘유엔시’에서 연구년을 보내며 채플힐의 공짜버스를 고맙게 탔다. 하지만 지금도 그 제도를 고맙게 여기는 나와 달리 그는 이 제도에 크게 실망했던 것 같다. 그는 채플힐 공짜버스의 이면에는 “귀신같이” 과속과 속도위반을 단속하는 경찰이 물리는 엄청난 액수의 교통범칙금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버스 요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금과 법원사용료로 물고 난 뒤에야 공짜 버스가 전혀 공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내 보기에 최 위원의 이런 주장은 왜곡된 사실관계에 입각해 있다. 그는 채플힐의 벌금이 미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유별나게 높은 듯이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채플힐이 평균 수준보다 약간 높긴 하지만, 미국의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교통위반 범칙금은 우리에 비하면 훨씬 엄격하고 세다. 그리고 경찰이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는 지방정부 산하 기관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채플힐의 범칙금이 약간 높다 해도 주민들이 정치적으로도 수용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채플힐의 공짜버스 예산이 최 위원이 말하듯이 교통범칙금과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채플힐 시정부 홈페이지를 찾아가면 예산 상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시영버스 전체 예산의 38%는 ‘유엔시’가 부담하고, 주정부 지원금이 12%, 연방정부 지원금이 13%, 인근 도시 카버러가 7.5%, 채플힐 시정부가 21%, 기타 수입이 8.5%다. 그리고 채플힐의 부담금 재원이 기본적으로 재산세임을 밝히고 있다. 이런 사실은 교통 범칙금이 공짜버스 예산과 별 상관이 없음을 보여준다.


채플힐 공짜버스의 중심에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우선 버스가 교통의 중심이 아닐 때 감당할 수 없는 교통문제에 처할 주립대의 공간 상황이 놓여 있다. 하지만 이런 요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짜버스가 없으면 이동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약될 가난한 대학생들에 대한 배려다. 배려가 더 본질적인 요인임은 채플힐 시정부가 버스 정류장까지 나오기 어려운 장애인에게는 공짜택시(EZ Rider)까지 제공하는 것에서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학생보다 더 충실히 투표권을 행사할 이 지역의 부유한 시민들이 재산세를 내지 않는 대학생 혹은 최 위원이나 나 같은 사람이 주된 수혜자가 될 공짜버스 정책을 지지했다는 점, 그리고 채플힐의 기자들은 최 위원처럼 어처구니없는 기사나 칼럼으로 시민을 호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14.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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