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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계산기-C 버튼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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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4-09 14:20 조회21,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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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계산기를 자주 사용할 일이 생겼다. 일상적으로 익숙한 사물이지만, 평소 거의 사용하는 일이 없었던 탓에 이 사물과의 만남이 내게는 조금 낯설다. 손바닥만 한 계산기를 두들기면 머릿속의 어지럽던 연산이 바로 숫자화되어 나타났다.

계산기의 숫자는 짧은 자릿수나 긴 자릿수나 여지없이 분명해 보인다. 내가 직접 계산기를 두들기든, 타인이 계산을 해서 보여주든 계산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단 한 치의 오차 가능성도 의심하지 않는다. 간혹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계산과 계산기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으면, 우리가 의심하는 것은 도리어 `머리`지 계산기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계산기는 소수점 단위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전적인 `믿음`에 의해 존재하는 사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믿음의 역설이다. 계산기는 이 사물을 만들고 사용하는 우리 자신의 `머리`, 인간의 계산능력에 대해 스스로를 불신하게 만든다.


이런 믿음의 역설은 이 사물이 소수점 단위의 아주 긴 단위까지 정확하게, 그리고 거의 즉각적인 수준에서 계산해 주는 속도 때문이다. 치밀한 정확성과 속도로 인해 계산기는 언제나 인간 두뇌를 이기는 사물이 되었다.


사회학의 고전이 된 마셜 맥루한에 따르면 `미디어`는 인간 신체의 확장을 뜻하는 도구적 삶 전반 키다. 그는 `메시지`라는 말을 문자나 말이 전달하는 내용이 아니라, 신체 확장으로서 미디어가 변화시키는 삶의 모양새와 효과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작고 간단한 외형 속에 엄청난 효율성을 자랑하는 계산기는 뇌의 기능적 일부를 연장한 매우 편리한 `미디어`가 될 것이다. 생각해 볼 점은 역시 `메시지`다.


문명의 도구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심은 효율성의 비약적인 증대와 더불어 무엇의 약화와 위험성을 가져오는가. 문득 눈에 들어온 것은 계산기의 C 버튼(C는 clear를 뜻한다)이다. 정밀하게 계산된 숫자들을 간단히 초기화 상태로 되돌리는 C 버튼은 나타난 숫자가 절대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계산기에는 계산을 지울 때 쓰는 C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4.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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