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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버스-평등한 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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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5-07 15:13 조회28,4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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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동네 앞으로 지나다니는 버스 중에는 커다랗고 귀여운 눈망울에 예쁜 옷을 입고 있는 버스가 있다. 슬쩍 지나가는 차 안 풍경을 본 적이 있는데 어린이 승객으로 버스가 만원이었다. 관념보다 감각이 활짝 개방돼 있는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이 버스가 시민에게 `친구`가 되는 감성 확보의 새로운 길 하나를 발견했다는 뜻이다.

여전히 버스는 대중교통의 핵심이다. 지하철이 깔려 있지 않은 대도시 이외 지역에 사는 이라면 이 사물의 중요성을 절대적으로 실감할 것이다.


이 사물은 지상 교통 수단 중에서도 몇 가지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 핵심은 `평등한 좌석`에 있다. 버스에는 일반 승용차와 달리 `조수석`이라는 개념이 없다. 따라서 조수석 뒷자리 `상석`이라는 개념도 없다. 어른과 아이 자리, 남자와 여자 자리, 사장과 직원 자리가 따로 없다. 버스 안 승객은 제각각 개별적인 목적지를 지녔으나 크게 보면 버스 운행 노선과 `같은 방향`을 공유하는 `평등한 시민`일 뿐이다.


서 있는 노약자를 위해 앉아 있는 이가 자리를 `양보`할 수 있는 미덕도, `평등한 좌석`이 전제되고 난 후에야 발생할 수 있는 `윤리`다. 장유유서(長幼有序)라는 서열에 기초한 관습, `눈치` 때문에 젊은이가 자리를 `비키는` 것은 진화한 시민사회 관점에서 보면 진정으로 윤리적인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평등이라는 전제 아래 건강한 이가 `약한 이`를 배려하고 보호한다는 자발성이 일어나는 것이 진짜 윤리다. 아마 관습이 된 `예(禮)`가 옛 성인(聖人)에 의해 시작됐을 때도 본래 그런 정신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현대 제도 민주주의의 한 축인 미국 민주주의가 결정적으로 진화한 것은 흑인이 투표권을 갖게 된 이후다. 그 시발점이 된 흑인 민권운동의 핵심적 사건도 버스에서 일어났다. 백인은 앞좌석, 흑인은 뒷좌석이라는 좌석 구분에 저항해 한 흑인여성이 좌석의 평등성을 선언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민이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집권자들이 아직도 자기들만의 `관용차`에서 내려와 `시민의 버스`로 갈아탈 생각을 안 하고(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시민`이 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4.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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