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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효제] 북한 인권운동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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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2-17 17:42 조회19,7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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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폭정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 중반, 미국의 인권단체 아시아워치위원회가 남한에 조사단을 파견한 적이 있다. 위원회는 민주화 단체와 재야인사들을 만나 생생한 증언을 청취하였다. 아시아워치는 이 조사에 근거하여 1986년 초 방대한 보고서를 펴냈다. 학생들과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 대학에 대한 감시와 개입, 반체제 인사들의 가혹한 형기, 노동운동의 폭력적 억압, 언론인의 추방과 재갈 물리기, 출판물 검열 등이 상세하게 열거되었다. 특히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고문 관행이 심각한 인권유린으로 지적되었다. 레이건 행정부의 대 한국 정책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남한의 민주진영으로서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보고서 중 한 챕터가 북한 인권문제에 할애되었다. 집필자는 브루스 커밍스, 당시 워싱턴대학 교수였다. 커밍스 교수가 파악한 북한의 인권은 한마디로 짙은 안개에 뒤덮인 상태였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 중 하나, 언론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단지 억압되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였다. 적어도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발언과 체제 비판, 독자적인 정치조직, 이런 것들을 논하기 어려운 나라였다. 애초 아시아워치는 남북한 모두에 조사단을 파견하려고 했으나 북한에는 입국조차 할 수 없었다.

북한 인권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는 남한과의 대비가 언제나 배경에 깔려 있다는 점, 그리고 냉전이라는 특수한 이념 대결구도 하에서 인권을 균형 있게 보기가 어려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 당시 남한은 형식적으론 민주체제이면서 극단적으로 인권 탄압을 하는 나라, 그러나 그나마 반민주 현실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기준이 있는 나라였다. 반면 북한은 평가기준 자체가 다른 나라였다. 전자는 인권유린 리스트가 길게 나오는 나라였고, 후자는 그런 리스트를 작성하기도 어려운 나라였다. 그렇다면 남북한의 인권 우열을 가릴 수 있었을까. 반공주의자들은 바로 이런 이유를 들어 남한이 무조건 우월한 체제라고 본다. 이들은 남한 사회 내에서 반민주·반인권 상황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사치라고 판단한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남한 국민의 기본권은 남한이 이북에 의해 적화되지 않은 ‘불성립에 따른 반사적 가치’를 뜻한다. 더 나아가, 반공주의자들은 훨씬 더 ‘행복한’ 남한 국민이 자국에 대한 비판보다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노력을 다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동의 않는 사람은 당장 북한으로 보내자는 폭언도 서슴없이 퍼붓는다.

남한의 민주파는 본질적으로 인권 침해는 단순비교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형식적 민주체제에서의 인권침해든 전체주의 하에서의 인권유린이든 공히 투쟁의 대상인 것이지, 비교를 운운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방 후 남한의 민간인 학살사건, 유신 암흑기, 광주항쟁을 겪은 나라에서 길고 긴 투쟁을 통해 이 정도라도 민주주의를 기반 위에 올려놓은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희생 과정을 거친 뒤에야 남한이 인권보장을 위한 투쟁을 전개할 공간이 크게 확장된, 곧 반증이 가능한 열린 사회가 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오늘날 북한은 남한과 비교가 불가능한 사회다. 건성건성 박수 치고 오만불손하게 행동했다고 총살당한 장성택을 보라. 하지만 민주파는 그런 이유만으로 북한에 대해 우리가 일방적으로 인권을 설교할 수 있는 여유로운 입장은 아니라고 볼 것이다. 인권은 스스로 실천해야 할 가치이지, 타자에게 설교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에 관한 한 완벽한 사회체제는 이 세상에 없다. 이 밖에 북한의 인권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을 가진 민족파도 있지만 이들의 견해는 소수가 되었다.

이러한 존재론적 대립이 북한 인권 문제를 둘러싼 남한 내 견해 차이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인권은 절대적 가치로 주창되지만 그것을 실천할 때에는 맥락과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인권을 상대를 비난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는 행태를 정상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 인권의 정치도구화는 원래 냉전의 산물이었다. 냉전 당시 동서 진영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인권을 경쟁적으로 오용했다. 미국은 시민·정치적 권리로써 소련을, 소련은 경제·사회적 권리로써 미국을 난타했다. 이런 양분구도 때문에 국제앰네스티는 냉전 시절 양심수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비동맹 진영 사이에서 기계적 균형을 맞추어야 했다. 앰네스티는 모든 쪽에서 욕을 먹었지만 그 점을 역이용해 모든 진영의 비판들을 모아 책자를 간행하기도 했다. 두루 욕을 먹는 것 자체가 인권단체의 공정성을 입증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한반도에선 냉전이 현재진행형이다. 남한의 인권단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냉전 당시의 국제인권운동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인권운동은 교실에 비유할 수 있다. 학생들이 걸상에 앉아 있고, 앞쪽에는 칠판이 있다. 칠판은 인권의 수직적 차원이다. 여기엔 인권의 기본원칙들이 적혀 있다. 모든 인권이 모든 이에게 적용된다는 보편성, 인권 목록은 나눌 수 없고 크게 한 덩어리로 보아야 한다는 불가분성, 빵과 장미가 다 필요하다는 원칙, 인권 목록이 서로 기대고 있다는 상호의존성, 유엔을 포함한 국제인권 규범에 대한 동의, 인권은 인권적인 방식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평화적 원칙 등이 그것이다. 걸상들은 인권의 수평적 차원이다. 각각의 걸상은 인권운동의 여러 영역을 상징한다. 여성인권, 장애인권, 노동인권, 언론인권, 집회결사인권 등등. 어떤 영역에서 활동하든 간에 인권 운동가라면 칠판에 적힌 인권의 대전제에 동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 반대운동을 하더라도 국가보안법이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관한 유엔의 권고에 원칙적으로 동의해야 정상적 인권운동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인권운동 걸상에 앉아 있는 단체 중 상당수가 칠판에 적힌 원칙을 외면하거나 편리할 때에만 활용한다. 이들은 엄밀하게 말해 북한인권운동이 아니라 북한 타도운동을 하는 단체들이다. 인권 교실 내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반대로 칠판의 대원칙에 동의하는 전통적 인권운동 중에는 북한 인권 걸상에 앉아 있는 단체가 드물다.

그런데 북한 인권에 관해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 인권운동 걸상에 앉아 있는 단체 중 상당수가 칠판에 적힌 원칙을 외면하거나 편리할 때에만 활용한다. 이들은 엄밀하게 말해 북한 인권운동이 아니라 북한 타도운동을 하는 단체들이다. 인권 교실 내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 반대로 칠판의 대원칙에 동의하는 전통적 인권운동 중에는 북한 인권 걸상에 앉아 있는 단체가 드물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다. 전자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인권운동을 한다면서 왜 인권의 수직적 차원에 미온적인가. 당신 인권운동 맞나. 인권운동 하려면 똑바로 하라. 후자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왜 중요한 인권 영역을 방치하고 있는가. 당신 직무유기 아닌가. 가능한 선에서 개입하도록 노력하라. 북한이탈 주민을 위한 활동 같은 것도 있지 않은가.

 

한 가지 더 있다. 인권 교실이 어떤 건물 내에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튼튼한 건물 내에 위치하고 있다면 통상적인 인권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건물에 교실이 들어서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럴 때엔 인권운동과 건물 붕괴 예방조치를 함께 취해야 한다. 인권운동이 구체적 인권침해에 대응하면서도 구조적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특수상황이 꼭 이런 경우다. 역내의 갈등과 불안정 요인을 감안하면서 인권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인권의 정치화를 거부하되, 인권이 결국 정치적 역학 속에서 구현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 인권법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시리아 인권법은 만들지 않으면서 북한 인권법을 제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인권의 정치화다. 굳이 만들겠다면 반북단체 지원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실질적 인권향상을 위한 법을 내놓아야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 통찰이 이미 나와 있다. 구조적 차원에선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이 유력한 이론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행 차원에선 헬싱키 프로세스의 한반도 버전을 모색하는 박경서의 제안, 코리아 인권 개념을 제시한 서보혁의 제안, 진보적 북한 인권운동을 주창하는 황재옥의 제안 등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의 인권 문제는 이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국제 인권 이슈가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좌우하는 중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한겨레, 2014.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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