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새 정치가 치명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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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4-25 17:00 조회24,8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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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한국 정치판에 새 바람을 몰고 온 태풍의 눈 2개가 빠르게 소멸하고 있다. 약속을 간판상품으로 삼아온, 정치적 위상이 남다른 박근혜 대통령과 안철수 의원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 파동을 계기로 그저 그런 정치인 중 한 명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 두 정치인에 대해 꽤 까칠한 비판을 해왔지만 막상 새 정치와 새 세상(새누리)이 누더기로, 조롱거리로 되어갈 조짐이 완연하자 나라의 미래가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싫든 좋든 이 두 분은 한국 정치혁신의 동력이자, 조타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담하다.
한국 정치만큼 비판과 훈수를 많이 받는 곳도 없을 것이다. 공자, 맹자, 한비자, 정관정요, 마키아벨리, 막스 베버 등 동서양 고전을 원용한 충고도 넘친다.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들도 이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탈(脫)권위, 도덕적 신뢰, 참여, 소통, 약속 준수, 기득권 내려놓기 등 무진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자살률, 양극화, 계층 이동성, 정치 불신 등 주요 지표는 세계 최악이다. 미증유의 위기 상황이 분명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정치가 권력과 권위라는 수단을 통해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맞다면 한국 정치는 문제(시대적 과제와 해법)도, 수단도, 자기 자신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적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니 백전백패일 수밖에! 규제개혁이 어려운 것은 대통령의 관심 부족이나 관료의 저항 때문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규제의 비용 대비 편익을 계량하기도 힘들고, 이마저도 시간에 따라, 운영의 묘에 따라 달라지니 말이다. 피아(彼我) 구분이 어려운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우리 시대 최대 현안의 하나인 양극화, 곧 과도하고 불합리한 격차도 마찬가지다. 이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우리 대표기업의 높은 생산성의 산물이기도 하고, 동시에 일감 몰아주기, 변칙 상속 등의 산물이기도 하다. 또 정유, 가스, 통신, 공기업 등의 독과점 지대(rent)와 합법적 ‘갑(甲)질’과 부동산 불로소득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근로조건을 노동의 양과 질이 아닌 기업의 지불능력 함수로 만들어 갑-을 모순을 심화시켜 온 노조운동의 산물이자, 기회의 재분배 기능은 못하면서 공공성과 안정성의 이름으로 과보호를 받아 온 금융의 문제이자, 최고 선망의 직장이 된 ‘관(官·공공)’ 부문의 문제이자, 빈약한 재분배 시스템의 문제이다.
그런데 헌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때가 되면 나타나는 새/신/뉴 정치도 문제가 뭔지, 왜 안 풀리는지, 자신은 어떻게 다르게 할 건지를 묻지 않는다. 단지 이기는 방법이나 자리를 차지하는 방법만 치열하게 묻는다. 설상가상으로 피아를 구분하는 프레임도 너무 낡았다. 민주 vs 독재, 노동 vs 자본, 1% vs 99%, 재벌 vs 서민, 좌익 vs 우익, 포퓰리즘 vs 반포퓰리즘 같은 프레임으로 선진국과 판이한, 한국 특유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새 정치로 하여금 정치의 근본에 눈감게 만드는 요인은 이 외에도 많다. 권력의 손아귀에 너무 많은 젖과 꿀, 사약과 오랏줄이 있다 보니 ‘묻지 마 단결’ ‘닥치고 승리’가 최고 가치가 된다. 양당 양강 구도와 영호남 정치 독과점을 만들어내는 선거 및 정당 제도도 분단 체제와 맞물리다 보니 공포·증오 마케팅과 선악 구도를 주무기로 사용하게 만든다. 지방이 가진 자원도 중앙권력 획득 투쟁(총선, 대선 승리)에 총동원해야 하니, 지방정치를 여의도의 식민지로 만들어야 한다. 정당공천 폐지라는 공약이 나온 배경이다.
새 정치든 헌 정치든 치명적으로 결여된 것은 참여, 소통, 약속 이행이 아니다. 우호적 언론 부족도, 의석수 부족도, 기득권 과잉도 아니다. 그것은 시대적 현안에 대한 정교하고 종합적인 진단과 대안이다. 진짜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다. 바른 통찰, 굳센 공심(公心)과 용기다. 이것이 바로 서면 대중의 가슴에 감동과 기대의 불을 지를 수 있다. 선거 및 정당 제도 개혁 에너지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참여와 소통도, 대화와 타협도, 기득권 내려놓기도 제대로 할 수 있다. 새 정치도 새 세상도 정련된 콘텐츠와 굳센 공심 위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동아일보, 201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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