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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고가도로-부조리극의 미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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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3-24 15:51 조회20,1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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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센(mise en scene)`은 연극이나 영화에서 무대나 카메라 속 한 장면을 시각적으로 조직하고 배치하는 연출 행위 전반을 일컫는 말이다. 어원이 `연극`에서 나온 이 용어는 하나의 `장면`이 시각적으로 기획되고 조작된 `인공 무대`라는 뜻을 원천적으로 내포한다.

버스를 타고 농촌 어느 들녘을 지나다가 한 촌로가 먼 들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풍경을 보았다. 하지만 이 풍경을 미장센이라고 하기 어렵다.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사람은 들판의 일부다. 여기에는 전경으로 나선 주인공도, 배경으로 물러난 조연도 없으며, 전체에서 부분을 분리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풍경에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 도시 풍경은 반대다. 그것은 거대한 미장센이다. 도시는 자연적 시간의 일관된 산물이 아니다. 풍경은 다른 시간과 공장에서 생산된 복잡한 기계부품처럼 파편적인 요소들로 분할되며, 개별적이고 어지러운 이미지 조각들로 조립ㆍ배치되어 있다. 이 풍경에서는 한 대상이 또 다른 대상을 지배하기도 하고, 하나의 오브제가 풍경 전체를 상징하는 암시적 이미지를 거느리기도 한다. 어떤 강력한 의지와 조작적 의도를 통해 풍경이 일련의 연극적 배치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눈에 띌 만한 강력한 구조물은 도시의 연극적 성격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오브제가 될 수도 있다.

허공에 건설된 `고가도로`는 도시의 시간에 미래를 도입하고, 지상에 `천국`을 기입하기 위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기술과 속도에 열광한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 건축스케치 중에는 고가도로에 대한 것이 적지 않다. 산업화를 군사작전의 일종으로 여겼던 과거 정치공학이 이 사물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쉽게 짐작이 된다.

서울 최초 고가도로였던 아현고가도로가 3월 말이면 완전 철거된다. 아직도 서울에는 고가도로가 80여 개나 있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실은 고가도로가 아니라 사시사철 드리운 고가 아래 무겁고 음습한 그림자다.


이 그림자가 시간의 어둠으로 전화되면, 예전에는 여기에 노골적인 밤술집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현대시 창시자로 불리는 보들레르 시들에서 찬란한 파리는 술파는 여자들의 도시이기도 했다. 한때 현대성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가장 퇴락한 이미지를 갖게 된 서울 고가도로는, 도시가 부조리극의 연극적 미장센일 수도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사물이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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