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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규제의 본산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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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3-26 12:58 조회20,5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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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거칠고 강경하다. “쓸 데 없는 규제는 우리의 원수” “암 덩어리”라느니 “(규제를) 적극적으로 들어내야만 경제 혁신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대통령의 말은 규제라는 방패와 장벽에 기대어 사익을 챙기는 일부 관료와 이익집단을 움찔하게 할 만하다. 그런데 ‘규제 개혁’이 정부의 중요 과제로 채택된 것은 전두환 정부 때부터였다. 이후 여섯 개의 정부에서도 예외 없이 ‘규제 개혁’이 큰 화두였다.

박근혜 정부에서 ‘손톱 밑 가시 뽑기’가 있었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는 ‘전봇대 뽑기’가 있었다. 전두환∼노무현 정부에 걸쳐 총리 2번(김영삼 노무현), 서울시장 2번(노태우 김대중), 장관 3번(교통부 농수산부 내무부)을 역임하며 ‘행정의 달인’ 소리를 듣곤 하던 고건 전 총리가 가장 중시한 가치도 바로 규제 개혁이었다. 1997년 3월 그의 총리 취임 일성이 “허다한 정부 규제가 특혜와 정경 유착”을 가져오기에 “경제 활성화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규제 혁파 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며 “양(量) 위주에서 질(質) 위주 규제개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다고 한 게 이 모양이면 이제 규제 혁파를 외치기 전에 규제가 질기게 양산, 온존되는 구조와 이를 혁파, 합리화하는 시스템을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규제의 모체이자 양산 공장은 어디까지나 국회와 국무회의가 의결한 법률과 대통령령이다. 그 아래 관료와 이익집단이 주로 밀실에서 만지작거려 온 별표, 시행규칙(부령), 행정명령, 예규·지침 등이 있다. 아마 박 대통령이 엄포를 놓은 지점은 후자일 것이다. 이 하위 규제들이 ‘암’으로 되어버린 것은 법률 자체가 너무 중요한 것을 하위 시행령 및 시행규칙 등에 위임해 버렸고, 또 우리 정치와 언론 및 시민사회는 (악마가 숨어 있는) ‘디테일’을 잘 모르거나 경시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법령이 ‘잔디 마당의 잡초를 확실히 제거하라’고 하면, 마당 전체를 아예 시멘트로 바르는, 자기 책임영역 하나는 확실히 수비하도록 되어 있는 관료 조직의 속성 때문이다. 한마디로 규제로 인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종합적, 균형적으로 타산하는 일을 해야 할 정치(대통령, 국회의원, 정당, 언론)의 부실이 진짜 문제라는 얘기다.

규제를 손보는 것은 민감한 폭발물을 다루는 일이다. 단적으로 우리가 겪은 초대형 정책 사고는 대개 규제완화(자율화)와 관련이 있다. 대학진학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부실 대학을 양산한 1995년의 5·30 교육자율화(대학 설립 자율화),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된 외환금융 자율화, 아파트 값 폭등을 초래한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카드 대란을 초래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자율화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규제 완화에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의 명운을 가른 것도, 선진국과 우리의 결정적인 차이도 자율화의 폭 내지 규제의 질이다. 규제는 강제성을 띤 어떤 기준이다. 금지선이자 허용 기준이다. 이 선(線)을 없애거나 달리하면 선의 안과 밖에서 환호성과 비명, 한숨이 터져 나온다. 단 하나의 규제도 공적 가치와 사적 가치(꼼수)가 뒤범벅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유효기간이 남아 있는 것도, 한참 지난 것도 있지만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은 원래 보고 싶은 것만 보기에, 규제로 이익을 보는 자는 유효기간을 알 리가 없다.

규제가 촘촘하고 강하기로 올림픽 메달감인 우리의 선거운동 규제, 토지 이용 규제, 금융 규제, 교육 규제, 보건의료 규제, 지방자치 규제 등을 살펴보면 엄청 깊은 뿌리가 있다. 우리의 역사, 문화, 성정과 지경학적 조건과 정치 기득권자들의 농간과 관리 편의주의 등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규제 타령’의 최대 맹점은 개인, 기업, 민간, 지방의 창의와 열정을 옭죄는, 깊은 뿌리를 가진 진짜 규제를 규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하나 규제의 본산이 법령이고, 특히 점점 더 많은 권능을 휘두르는 국회라서, 선거 및 정당제도의 선진화 없이 규제의 합리화는 없다는 사실도!

규제를 만지려면 사회 역사적 통찰력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선(線)의 안과 밖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와 비탄을 듣는 귀가 있어야 한다. 현재뿐만 아니라 일파만파의 파장이 만들 미래까지도! 이는 온전히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몫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동아일보, 2014.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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