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호] ‘쌍용차 해고자 복직’ 판결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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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2-26 17:36 조회18,9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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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단행된 쌍용차 대량(980명) 정리해고 무효 소송에서 2심(조해현 부장판사)은 ‘해고 무효=전원 복직’ 판결을 내렸다. 1심 패소 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방청한 해고자와 가족들은 너무 의외여서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단다.
자동차 산업과 인연이 깊고, 쌍용차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오랫동안 지켜 보아온 필자 역시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가슴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기뻐서가 아니었다. 판사의 따뜻한 마음과 결합한 ‘짧은 생각’이 일파만파 초래할 ‘진짜’ 사회적 약자들과 청년들의 피눈물이 눈에 밟혀서다.
법원은 쌍용차 자산 평가와 정리해고 적정규모 등 회계적 경영적 판단에 대해 ‘(옳다고)단정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상고심을 남겨 놓고는 있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이 판결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우리나라 정리해고 요건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었다.
현금도 바닥났고, 대주주(상하이 차)도 두 손 들었고, 자동차 산업의 특성으로 보나 쌍용차의 제품력, 영업력, 비용구조로 보나 환골탈태 없이는 돈 빌려줄 금융기관도, 인수할 기업도 있을 수 없는 상태인데, 청산을 피하고 해외 인수자를 모셔오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단행한 정리해고가 무효라면,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후에도 쌍용차 같은 중환자(기업)가 나오면, 이를 고용승계-인수합병 방식으로 살리기보다는 해고무효 소송 소지가 아예 없도록, 아예 기업을 완전히 죽여서 장기(臟器·자산)만 떼다 파는 방식의 구조조정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구조조정이 끝난 쌍용차의 기업 가치를 보고 인수한 마힌드라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09년 당시의 쌍용차는 뼈를 깎고 생살을 도려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채권자나 투자자도 거들떠보지 않는 회사였다. 그런데도 진보 정당과 일부 매체는 쌍용차가 ‘해고 살인’을 위해 회계를 조작했다고 몰아붙였고, 2심 재판부는 이런 여론을 상당 정도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세상의 철칙은 해고가 지극히 힘들고 근로조건도 하는 일에 비해 매우 높다면, 세계를 무대로 생산·판매 활동을 하는 기업은, 국적에 상관없이 국내에서 신규 투자와 고용을 매우 꺼린다는 것이다. 한국 고용문제가 악화되는 핵심 이유 중의 하나는, 세계화 자유화로 인해 사양산업 혹은 비교열위 산업의 국내 고용은 확실히 줄어드는 데 반해 현대·기아자동차 등 비교우위 산업의 국내 고용은 좀체 늘어나지 않고, 이들의 근로조건은 강한 교섭력에 힘입어 끝없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면 비교우위 산업, 기업은 200만 명이 나눠 먹을 파이를 100만 명이 나눠 먹으면서, ‘해고는 곧 살인’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업 완전 파산-해체 외에는 정리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조 판사의 논리는 국가가 망하기 전까지는 고용이 안정된 세금소득자 200만 명과 쌍용차, 한진중공업, 현대·기아차, 은행 등 몽땅 합쳐서 약 500만 명(경제활동인구의 20%)의 정리해고 관련 불안감은 확실히 덜어준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판결은 20%에게는 정리해고 원천 봉쇄와 정년보장을 의미하는 축포다. 하지만 이들이 전가하는 모순을 오롯이 받아내야 하는 나머지 80%, 특히 대학 졸업하고 20% 안에 드는 직장을 찾아 헤매는 청년들에게는 진입 기회 원천봉쇄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20%의 노동인권을 위해 80%와 후세대의 노동인권을 짓밟은 폭거다.
나는 조 판사의 판결을 ‘짧은 생각의 긴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동시장 수준보다 월등히 높은 근로조건을 누려왔기에 ‘해고가 살인’으로 되는 성(城) 안 사람 20%의 인권만 주목하고, ‘해고가 아프지만, 전직의 계기’일 뿐인 성 밖 사람 80%의 인권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우리 사회의 희한한 정의감의 산물이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서 극심한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는 기업과 노동의 부담·충격을 국가가 사회안전망(실업보험 등)으로 전향적으로 떠안아 기업과 노동을 가볍게 해줄 생각은 않고, 이를 오직 기업과 노동에 떠밀어 격렬한 갈등을 지속하게 만드는 우리 정치의 무능과 무책임의 산물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동아일보, 201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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