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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마스크-문명의 불안을 환기하는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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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3-03 14:10 조회19,1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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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텍 문명은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가장 잘 단련된 고대문명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전성기의 아스텍 인구 2000여 만명 중 95%를 몰살시키는 데에는 단 600명의 스페인 군대면 충분했다. `이교도`를 전멸시킨 이 `신의 손`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힌 건 신학이나 군사학이 아니라 현대의 `병리학`이었다. 유럽인들의 신체에서 옮겨 간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독감) 등 각종 유행성 바이러스들이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던 원주민들만을 `골라서` 몰살시킨 것이다.


현대의학은 암도 완치시키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일상의 질병이라 할 감기나 독감, 호흡기를 통해 침투하는 각종 바이러스의 진화에는 여전히 무력한 경우가 많다. 백신을 개발한다고 하지만, 병원균은 환경에 맞게 다시 진화한다. `예방`이 최선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스크`는 인간이 아직도 `알 수 없는 것들`과의 생존 전쟁에 격렬하게 노출되어 있는 연약한 생물종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사물이다. 이 사물이 드러내는 문명론적 이미지는 간명하다. 당대의 아스텍이나 잉카가 그러했듯이, 현대문명의 찬란함에 도사리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허약성, 확인ㆍ정복되지 않는 `실체`들에 대한 불안감이다. 돼지독감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원인불명의 바이러스나 가벼운 차원의 감기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 마스크는 일상의 인간들이 병원균에 대비해서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예방책이다.

마스크의 존재 핵심은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직접적인 차단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막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최근의 `미세먼지` 논란에서 보듯이, 호흡기를 통해 유입되는 바이러스들은 마스크를 엮고 있는 섬유분자보다 작다. 마스크로 들어오는 공기 자체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바이러스는 마스크의 `틈새`를 통해 호흡기로 유입된다. 인간은 병원균에 대항해 일제히 마스크라는 `방패`로 대항하지만, 이 `방패`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사실 병리학자들 간에 적지 않다.

 
 

분자생물학의 한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숙주로 삼아 개체변이를 거듭하는 미세존재들인 `바이러스`다. 물리적인 차원에서, 철학적인 차원에서, 이 사물은 지구에 인간의 눈으로 포착되지 않는 거대하고 강력한 존재들의 세계가 상존함을 환기한다. 실체가 확인되지는 않으나 `존재`의 기습에 의해 촉발되는 기분을 어떤 철학자는 `불안`이라고 불렀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4.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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