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 핵(발전)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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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1-29 12:16 조회19,57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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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외면하는 핵정책 작년 8월 이 난에서 정욱식 지음 『핵의 세계사』를 거론하면서 핵의 ‘군사적 사용’과 ‘평화적 이용’, 즉 핵무기와 핵발전 사이에는 기술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저자의 설명을 소개한 바 있다. 양자가 한 뿌리에서 나온 쌍생아라는 것은 이제 거의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핵무기와 에너지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과 철학이 요구된다”고 하면서도 이 저서가 주로 다룬 것은 무기로서의 핵 즉 핵폭탄에 관련된 군사정치적 문제였다. 저자가 관심을 갖고 글을 써온 것이 그쪽이었던 만큼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무기로서의 핵은 여전히 중대문제다. 더구나 북핵을 지척에 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잠시도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멈출 수 없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인류의 목표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비핵실현이 단순한 말잔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미국, 러시아, 중국 등 핵강대국들의 전면적인 핵폐기, 즉 전 지구적 차원의 비핵화가 논의의 최종목표로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전제 없이 이란, 북한 등 핵 후진국의 핵개발 프로젝트만 공격하는 것은 패권국들의 기득권 수호논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물론 핵군축 의무에 관한 다자협정 NPT(핵확산방지조약)가 있기는 하다. 현재 조약당사국은 189개국이다. 하지만 NPT체제는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북한 등으로 핵확산이 이루어지는데다가 그동안 미국의 일방주의를 옹호하는 역할에 활동이 치우침으로써 사실상 무력화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무기로서의 핵문제뿐만 아니라 에너지로서의 핵문제가 한반도 주위에 복잡하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핵발전은 값싸고 안전한 청정에너지라는 정부 당국의 홍보가 되풀이되어, 일부 생태주의자와 환경운동가들 이외에는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는 일이 드물었다. 심지어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고조되는 와중에도 당시 대통령 이명박은 편서풍 핑계를 대며 위험을 외면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후쿠시마 사고의 여파로 경쟁이 주춤해진 틈을 이용해 원전의 해외수출을 밀어붙였고, 2012년 3월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53개국과 4개 국제기구가 참가하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주최하기도 했다. 이 정상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것이 핵산업정상회의(Nuclear Industry Summit)인데, 원자력발전 관련 세계 CEO들이 원자력의 안전성과 우수성을 홍보하는 모임이었다. 이보다 앞서 2011년 9월 뉴욕 유엔 고위급회의에서도 주요국가의 정상들은 대체로 후쿠시마 재난이 핵발전을 중단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탈핵 전도사로 나서기까지 알다시피 후쿠시마 제1원전의 핵사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일 뿐만 아니라 어쩌면 더 치명적인 위험으로 악화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익중 교수의 최근저서『한국 탈핵』(한티재 2013.11)은 이런 사고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절박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의학과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동국대 경주 캠퍼스의 의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환경운동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경주시민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지 20년 정도 된 2009년 어느 날, 경주환경운동연합의 사무국장을 비롯한 세 사람의 방문을 받고 그들을 따라나섰던 것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 길로 경주환경운동연합의 의장이 되었고, 집행위원들의 의견에 따라서 지역의 환경 사안인 경주 방폐장의 안전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p.12, 이하 쪽수는 모두『한국 탈핵』의 것임) 지역에서 사회운동 초년병으로 조금 지쳐갈 무렵 후쿠시마 핵사고가 발생했다. 그것은 핵발전에 대한 저자의 인식 전체를 뒤흔든 큰 충격이었다. 몇 달 동안 텔레비전 앞에 앉아 후쿠시마 폭발장면을 수백 번 보면서 그는 저런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핵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3대 조건을 갖춘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깨달음은 그를 탈핵 전도사로 나서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2년 반 동안 450회 정도 탈핵강의를 하면서 내용을 조금씩 수정 보완했는데, 그 결과물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일반인들로서는 핵무기든 핵발전이든 지레 어렵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 이 책의 저자도 미생물학 전공의 의대 교수이므로 핵물리학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쉽게 서술되어 있다. 나처럼 자연과학에 백지인 사람도 한번 책을 잡으면 놓기 싫은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설명의 문장에 공연한 난삽성도 없지만 쓸데없는 과잉친절도 없다. 계몽적인 교양서의 모범적인 문체라 할 만한데, 어떻게 이런 성취가 가능했을까. 내 짐작엔 우선 핵문제에 대한 저자의 학습과정 자체가 저술에 반영된 측면이 있을 것이다. 낯선 이론에 관해 뒤늦게 읽고 배우는 사람의 경험이 책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말이다. 다음으로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곳이 경주이므로 위험에 대한 감각이 훨씬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 가족의 안전에 직결된 구체적 문제의식이 이 저서의 건조한 문체에 일종의 문학적 ‘감동’에 해당하는 절실함을 부여했을 것이다. 다음에 이 책의 주요내용을 발췌 또는 요약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이것이 책을 직접 읽는 수고를 대신하게 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일들 1) 화력발전소는 주로 석탄을 연소시켜 물을 끓이지만, 핵발전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연소시켜 물을 끓이고 이를 통해 전기를 얻는다. 석탄발전의 경우 연료를 매일 집어넣고 재를 꺼내야 하지만, 원자력의 경우에는 한번 넣은 핵연료가 약 4년 동안 밤낮없이 연소된다. 이렇게 사용되고 난 연료(사용 후 핵연료)가 이른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데, 아직도 뜨겁기 때문에 최소한 10년 동안 물통(저장수조)의 찬물 속에 넣어 식힌 다음 꺼내어 다시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p.25~26) 2) 일본 후쿠시마에서는 지진과 쓰나미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일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원자로의 온도상승 →핵연료봉이 녹는 ‘노심용융’ →용융된 핵연료가 원자로를 뚫고 밖으로 흘러내리는 ‘멜트스루’ →녹은 핵연료가 땅을 뚫고 내려가는 현상(이른바 ‘차이나신드롬’).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 때도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핵연료의 에너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므로 현재도 핵반응은 진행 중이다.(p.30) 3) 후쿠시마 사고원전에서는 매일 300톤 정도의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고 있다. 원전 근처를 흐르는 지하수도 녹은 핵연료와의 접촉으로 오염되어 바다로든 어디로든 흘러갈 것이다. 체르노빌 당시에는 원전의 아래쪽을 콘크리트로 막았다고 하는데, 후쿠시마에서는 이런 공사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오염수 문제는 용융된 핵연료가 모두 치워질 때까지 앞으로 50년 정도 지속될 것이다.(p.34~35) 4) 후쿠시마 핵사고의 규모는 체르노빌보다 훨씬 크다. 체르노빌은 원자로 한 개의 폭발이었고 가동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고준위 핵폐기물도 없었다. 손상된 핵연료의 양으로만 비교하면 후쿠시마의 사고규모는 체르노빌의 일곱 배 정도 된다.(p.37) 5) 핵폭탄에서는 엄청난 열과 폭풍이 순간적으로 발생한다. 반면에 핵발전소 사고는 열과 폭풍의 발생이 없는 대신 핵폭탄보다 수천 배 많은 방사능을 내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지금 사람이 살고 있지만 체르노빌에서는 앞으로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살 수 없다. 후쿠시마에서 직선으로 3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도쿄도 고농도 오염지역에 포함되는데, 그 오염지역의 넓이는 거의 남한 넓이와 비슷하다. 일본 땅 전체의 70%가 세슘으로 오염되었다는 것은 일본산 농산물의 70%가 세슘으로 오염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오염은 약 300년간 지속될 것이다.(p.38~39) 6) 김익중 교수 자신의 측정에 따르면 비록 적은 양이지만 후쿠시마에서 한국으로 방사능 물질이 날아왔다고 판단된다. 다른 연구소의 조사에서도 후쿠시마 핵사고 직후 군산, 부산 등 국내 12개 측정소에서 요오드131이 검출되었다. 핵사고와 관련된 우리 정부의 발표는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났다.(p.45) 한국은 핵사고의 확률이 가장 높은 나라 7) 전 세계 31개국에서 핵발전소(원전)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5등급 이상의 사고가 난 것은 스리마일(미국, 1979), 체르노빌(소련, 1986), 후쿠시마(일본, 2011) 세 곳이다. 이 사고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동안 핵사고는 원전 개수가 많은 나라에서만 일어났고 또 원전이 많은 순서대로 일어났다. 즉 “핵사고는 확률대로 일어났다.”(p.47~50) 원전 1개당 사고확률을 계산해보면 6/444, 즉 1.35%가 된다.(p.51) 이 세상에 고장 나지 않고 영원히 쓸 수 있는 기계는 없다. 원전도 200만~300만 개의 부품을 가진 기계에 불과하므로 작든 크든 언젠가는 사고를 낼 수밖에 없다.(p.55) 8)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나라들의 현황을 개수 순으로 보면 미국(104개), 프랑스(58개), 일본(54개), 러시아(32개), 한국(23개), 인도(20개), 영국(19개), 캐나다(18개) 등이다.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것을 합치면 물론 순위가 달라진다. 그런데 땅 넓이에 대한 원전 개수, 즉 원전밀집도에서는 2010년 현재 벨기에, 한국, 타이완, 일본, 프랑스 순이고 2024년까지 건설예정을 기준으로 보면 단연 한국이 1위이다.(p.49 및 58) 이것은 핵사고의 확률에서 한국이 앞 순위일뿐더러 사고가 초래할 위험도에서도 한국이 수위라는 것을 의미한다. 9)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독일·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 등은 탈핵을 결정했다. 중국은 잠시 신규건설을 중단하다가 1년 만에 다시 시작했고, 영국은 신규건설의 중단을 발표했으나 수명연장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러시아는 수명연장은 하지 않되 신규건설은 계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 나라에 비해 미국·프랑스·한국·캐나다 등 원전 개수가 많은 나라들 즉 원전의존도가 높고 핵사고 확률이 높은 나라들은 오히려 원전정책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p.60~62) 10) 한국은 유난히 원전비리가 많은 나라이다. 불량품, 중고품, 검증서 위조부품, 시험성적서 위조부품 등이 납품되었고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전임사장과 지식경제부 장차관 등이 비리에 연루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핵사고의 확률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p.62~63) 원자력은 성장이 멈춘 산업이다 11) 핵발전소는 1954년 소련의 오브닌스크에 처음 건설되었다. 이후 개수가 증가하여 1989년 정점에 이르렀으나 최근 25년 동안에는 늘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1979년 스리마일 사고 이후 30년 동안 원전의 신규건설이 없었고 유럽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지속적으로 원전을 짓는 나라가 있음에도 전체적으로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조금씩 원전을 줄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럽의 경우 1988년 177개이던 원전이 2013년 131개로 줄었다. 즉, 유럽은 분명하게 탈핵을 향하고 있다.(p.67~69) 12) 선진국은 차츰 원전에서 손을 떼는 반면 한국·중국·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은 원전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원자력은 성장이 멈춘 산업, 즉 사양산업이다. 후쿠시마 이후 사양화 추세는 더욱 급격해지고 있다.(p.74) 13) “원자력은 값이 싼 에너지다”라는 것이 정부와 원전업계의 주장이었다. 2011년 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킬로와트시(KWh)당 발전단가가 대략 원자력 40원, 석탄 60원, 수력 74원, 육상풍력 88원, 해상풍력 115원, 엘엔지(LNG) 118원, 석유 208원, 태양광 660원 등으로 되어 있다.(p.78) 그러나 정부는 지금까지 원전 발전단가의 계산근거를 한번도 밝힌 적이 없다. 2011년 현대경제연구원은「원전의 드러나지 않은 비용」이라는 보고서에서 사고발생 위험비용, 원전해체 및 환경복구 비용, 사용 후 핵연료 처리비용 등이 제대로 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p.79) 14)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데이터를 이용한 발전단가 비교에 따르면 2010년의 ‘역사적인 교차점’을 지나 태양광 발전단가가 핵발전보다 더 낮아졌다. 태양광 발전은 처음 설치할 때는 많은 비용이 들지만 연료비가 전혀 들지 않는 반면 원자력의 경우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p.80~81) 15) 세계는 이미 탈핵으로 향하고 있다. 석탄, 원자력 등 재생불능에너지를 버리고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문제와 경제성 둘 다 이유가 된다.(p.84) 그런데 석탄·석유·우라늄 등 에너지의 95%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하는 나라가 한국인데 풍력·태양광 등 국내 재생에너지의 개발에 가장 관심이 적은 나라도 바로 한국이다.(p.86~87) 방사능은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16) 방사능은 우리 몸의 세포를 손상시키므로 이론적으로는 거의 모든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암·유전병·심장병이 3대 질환이며 그 밖에도 백내장·신장병·폐질환 등 다양한 질병들이 방사능 피폭과 연관을 갖는다.(p.94) 핵사고에 의해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은 약 200종인데, 이 물질들이 어떤 경로로 우리 몸에 들어오든 피폭이 일어난다.(p.97) 17) 우리 몸에 들어온 방사능 물질은 생물학적 반감기(그 물질의 절반이 자연적으로 배출되는 기간)와 물리학적 반감기(그 물질의 방사선 배출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기간)가 열 번 이상 지날 때까지 우리 몸을 피폭시킨다. 물질마다 반감기에 큰 차이가 있는데, 예컨대 요오드131의 생물학적 반감기는 138일인 반면 플루토늄은 200년 이상이고, 요오드131의 물리학적 반감기는 8일에 불과하지만 플루토늄은 무려 24,000년이다.(p.98) 18) 수많은 핵실험(2천 번 이상), 핵폭탄 투하, 핵사고 등에 의해 그동안 세계에서 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피폭되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수십 년에 걸친 역학조사가 진행되었는데, 거기서 얻은 결론은 “피폭량과 암발생은 비례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결론이 그것인데, 방사능에 의한 암발생에는 역치(閾値, threshold.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의학적으로 ‘안전기준치’는 제로이다. 즉,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능도 암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된다.(p.112~114) 19) 방사능의 인체피해에 관한 연구는 대단히 미흡하다. 암에 대한 연구도 부족하지만 그 밖의 질병에 대한 연구는 더욱 부족하다. 의학연구, 특히 역학조사는 많은 돈과 시간이 소요되므로 정부나 산업계 말고는 연구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사하는 형국이 되므로 연구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수가 많다. 따라서 방사능이 우리 몸에 일으키는 피해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p.120~121) 20) 우리는 흔히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이때의 기준치는 의학적 근거를 가진 개념이 아니라 다만 ‘정부의 책임한도’를 정하는 값일 뿐이다. 즉, 안전기준치가 아니라 관리기준치인 것이다. 그나마 현재 우리나라는 200여 가지에 달하는 방사능물질 가운데 세슘과 요오드에 대해서만 기준치를 정해놓고 있다. 실상 이 기준치는 나라마다, 상황마다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p.123~127) 방사능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 21) 원전 주변지역은 고장이나 사고 없이도 다른 지역보다 방사능물질이 높게 나온다. 따라서 원전 종사자들과 주변지역 주민들에 대한 역학조사는 당연히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84억의 예산과 803명의 연구원을 투입하여 20년 장기과제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2011년 12월 12일 서울에서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요약문에는 “원전 주변에서 암발병 위험도가 증가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 발표를 들을 권리가 있는 지역주민들은 발표회가 있다는 사실도 통보받지 못한 상태였다.(p.150~153)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익중 교수의 주선으로 반핵의사회 소속 전문가들이 원자료를 재분석한 결과 원전 주변지역에 암발생 위험이 높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입증되었다.(p.153~154) 요컨대 원전 주변에 살고 있다는 것은 많은 양의 방사능물질에 노출되어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p.157) 22) 현대의학에서 방사선의 역할은 대단히 크다. 그러나 병의 진단과 치료과정에서 병원근무자들과 환자들은 다양한 방사능에 노출된다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이때 당연히 피폭이 일어나기 때문인데, 그 위험성에 관해 우리나라 의사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 피폭량을 줄이기 위한 의사와 환자들의 관심이 공히 필요하다.(p.161~165) 영원한 숙제, 핵폐기물 23) 연탄을 때면 재가 나오듯 핵발전을 하면 당연히 핵폐기물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폐기물을 고준위와 중저준위 두 가지로 분류한다. 고준위핵폐기물은 사용후핵연료를 일컫는데, 충분히 식힌 핵연료(고준위핵폐기물)는 적어도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런 보관기술을 현재의 인류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것, 즉 세계 어느 나라도 고준위핵폐기장을 건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p.167~169) 다만, 작년 교육방송의 <국제다큐영화제>(2012. 8.19)에서 상영된「영원한 봉인」(Into Eternity)이 보여주었듯이, 유일하게 핀란드 정부만이 경기도만한 넓이의 암반층을 지하 500미터까지 뚫고 내려가 앞으로 10만년 동안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설계된 공간(온칼로)을 만들고 거기에 핵폐기물을 가두려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핀란드의 지하저장소 ‘온칼로’는 핵폐기물 저장기술의 성공사례로서보다는 탈핵의 당위성을 상징하는 공포의 기념물로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24) 한수원 자료에 의하면 원자로마다 한 개씩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저장수조는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부산 고리원전은 2016년, 영광은 2018년, 울진은 2019년, 경주는 2018년에 포화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고준위핵폐기물을 담아둘 공간이 없게 된다. 결국 원전폐쇄 이외에 해결책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p.175~181) 25) 우리나라는 현재 경북 경주시에 중저준위방폐장을 건설하고 있다. 지하 100미터 깊이에 동굴을 파서 거기다 중저준위핵폐기물을 보관한다는 계획이다. 방폐장 건설지로 경주가 결정될 2005년 당시 경주 시민들이 몰랐던 사실은 이 지역의 암반이 매우 부실하고 특히 지하수가 많이 흐른다는 점이었다. 정부와 한수원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공표하지 않고 2007년 7월부터 방폐장 건설공사를 시작했다.(p.183~186) 26) 고준위핵폐기물의 처리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직접처리이고 다른 하나는 재처리이다. 직접처리는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식으로, 아직 이 기술은 확보되지 않았다. 재처리는 고준위핵폐기물 내에 있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방식으로, 현재 대부분의 핵무기 보유국들이 채택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임에도 재처리를 하지 않고 있고, 반면에 일본은 유일하게 미국으로부터 재처리 허가를 받은 국가이다.(p.203~206) 27)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핵재처리를 금지하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한마디로 ‘핵무기개발 절대불가’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핵재처리에 엄청난 비용이 들뿐더러 재처리시설이 일반적인 핵발전소보다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에 이중적 의미에서 불찬성이다.(p.218~220) 탈핵은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28) 우리나라 전기 생산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이고 화력이 70% 가까우며 태양광·풍력·수력 등은 1~2%에 불과하다. 그런데 후쿠시마 이후 독일·스위스·벨기에·타이완 등은 탈핵을 결정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방법은 두 가지, 첫째는 전기수요의 관리이고 둘째는 재생가능에너지의 개발이다. 탈핵을 결정한 나라들은 전기수요가 매년 감소하고 있거나 거의 증가하지 않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여러 재생가능에너지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두 우리나라와는 다른 점이다.(p.223~224) 29) 우리나라는 전기요금이 세계적으로 대단히 싸다. 생산원가 이하로 전기가 공급되고 있고, 산업용의 경우에는 중국보다 더 싸다. 이처럼 저렴한 요금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예를 들면 에너지 효율이 낮은 전기난방이 증가하고 전기사용이 많은 해외공장들이 국내로 유입될 뿐만 아니라 각 부문에서 전기낭비의 습관화가 진행되고 태양광·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의 개발이 방해를 받는다. 현재의 요금체계는 전기를 많이 쓰는 대기업에 큰 이익을 주는 것이다.(p.226~231) 30) 지금 세계에는 태양광발전의 열풍이 불고 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연간 거의 10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발전단가가 매년 낮아지고는 있으나 아직 높은 편인데도 태양광발전이 이렇게 급성장하는 이유는 각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때문이다. 가장 친환경적이고 철저히 국산 에너지라는 점이 정부지원의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있던 지원제도를 이명박 정부 때 없애버렸고, 이후 태양광발전은 정체상태에 있다.(p.242~243) 31) 핵발전과 화력발전은 거대한 기계를 이용하는 설치산업이기 때문에 고용효과가 적은 반면 태양광·풍력·지열·소수력(소규모 수력발전) 등 재생가능에너지 분야는 상대적으로 고용효과가 크다. 뿐만 아니라 거대설치산업에서는 소수의 투자자들이 경제효과를 독점하지만 태양광산업의 경우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경제적 효과를 나눌 수 있다. 즉, 경제민주화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이다.(p.248~250) 32) 오직 한국만이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가장 많은 원전을 짓고 있는 중국만 하더라도 핵발전 비중은 약 2%, 재생가능발전은 약 18%이며 풍력발전량은 세계 1위이다. 지난 25년 동안 지속된 탈원전의 추세를 우리만 외면하고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많이 늦었지만, 그러나 이제라도 에너지정책의 방향전환이 절실하다. 탈핵은 결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p.250~253) 거꾸로 가는 에너지정책 김익중 교수의 책을 읽고 이 글을 초하는 동안 김 교수가 다룬 핵심문제 중의 하나가 정치-사회적 논의의 중심으로 진입했다. 이른바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작년 11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심의 확정한 ‘제2차 에너지기술개발기본계획’을 검토한 끝에 지난 10월 에너지 전문가들의 모임이라는 ‘민-관 워킹그룹’은 2035년까지 원전비중을 22~29%로 조정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시했다는 것이다. 당초 2008년 1차 에너지기본계획 발표 때 2030년까지 원전비중을 41%로 높이기로 했던 것에 비하면 원전축소 방향을 선택한 것이라고 정부는 선전했고 주류언론은 이를 받아쓰는 데 급급했다. 국회에서도 지난 11월 7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회의실에서 공청회를 열어 민-관 워킹그룹의 권고안에 대한 다양한 개선점을 제기했다. 보도에 따르면 의원들은 원전비중 축소와 수요관리 중심의 정책전환 등 권고안의 전체적 지향에는 공감한 반면, 에너지기본계획의 전제에 해당하는 ‘수요전망’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전비중의 축소가 기본방향이라는 주장 자체가 사실과 다르다. 참고삼아 11월 18일 발표된 민주노조·에너지정의행동·사회진보연대 등 13개 단체의 공동성명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촉구한다>를 간단히 소개한다. 성명은 먼저 “후쿠시마 핵사고, 전력대란, 밀양 송전탑 사태, 원전비리 등 에너지 체제와 정책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 계속해서 터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정부의 에너지 기본계획에 내포된 잘못된 전제들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예컨대 2035년의 전력수요가 지금보다 80% 증가할 것으로 과도하게 예측한 점, 이렇게 되면 원전축소는커녕 원전을 최소 12기 내지 18기 더 지어야 한다는 점, 대기업 특혜와 에너지산업의 민영화 확대라는 문제점, 전기요금의 인상을 통한 서민부담의 증가 등이 그것이다. 정부의 정책기조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기후변화와 환경악화에 대한 고려가 없을뿐더러 서민경제에 대한 배려조차 묵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데, 여기서도 결국 문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작동임을 실감한다. |
염무웅 문학평론가
(다산포럼, 2013.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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