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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 우리 자신을 위한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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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2-09 15:05 조회18,9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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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신문의 칼럼을 강상중 교수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했다. “일본에서 출생해 재일 한국인 2세로 살아온 60여 년간 요즘처럼 일본의 변화에 형언하기 어려운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경향신문> 12월2일치)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지식인이 이렇게 느꼈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평화와 풍요의 표층 이미지가 지워지고 감추어져 있던 진짜 얼굴에 마주친 듯한 섬뜩함이 엄습한다니, 그 정체는 무엇인가. 과거에도 그런 적이 한 번 있었는데, 쇼와 천황의 장례식 광경을 보았을 때였다. “1989년 초, 돌연 백주 도쿄의 한복판에서 모든 것이 희미한 빛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비현실적 오싹함을 그는 경험했다고 한다.

그의 두려움을 내가 100% 실감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가 일본 사회에서 한 사람의 타자로 살고 있다는 존재 조건에 관계된다. 평범한 이웃으로 잘 지내던 동네 사람이 관동대지진 같은 불의의 재앙이 닥치면 어느 순간 학살자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1923년 9월의 악몽을 재일동포의 무의식은 아직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 사회가 누려온 장기적 평화와 번영에 관계된다. 그가 태어난 1950년부터 3년간 이 땅을 초토화시킨 전란뿐만 아니라 유신체제와 광주학살 같은 공포의 기억이 일본에서는 뉴스 속의 얘기다. 그렇다면 그의 불안은 과민반응인가.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꽤 오래전 강 교수는 일본 중의원 헌법조사회에 출석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한 적이 있다. “일본이 미-일 관계를 반석처럼 탄탄하게 유지하면서 어떻게 인근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참으로 이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갈 것인지가 21세기 일본의 진로에서 가장 큰 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강상중 지음,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이 증언이 있고 나서 반년 뒤 9·11 테러가 일어난 데서도 짐작되듯이 일본 전후체제의 절대적 보호자 미국은 유일 패권에 어딘지 금이 가는 듯했고, 반면에 중국은 ‘도광양회’를 지나 ‘대국굴기’로 향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이런 역사적 변화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은 일본에나 한국에나 당연히 국가적 중대사였다. 이미 이때 일본 의회는 자위대의 지위 문제와 미-일 동맹에서의 집단자위권 문제를 헌법상의 핵심 사안으로 보고 헌법조사회를 설치했던 것이다. 의회 차원에서 일본 나름의 대응을 연구한 것이었다.

강 교수의 발상은 몇 년 뒤 민주당이 집권함으로써 정부 정책으로 채택될 기회를 맞았다. 미-일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되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 지역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자는 구상을 데라시마는 ‘친미입아’(親美入亞)라는 슬로건으로 요약했는데, 그는 그것이 “미국이 아시아에서 고립당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아시아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런 방향 전환이 바로 ‘민주당 정권 탄생의 의미’라고 주장했다.(데라시마 지쓰로 지음, <세계를 아는 힘>) 그러나 그것은 미국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향 전환이었다. 일본이 ‘동맹국’ 미국과 ‘잠재적 적국’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노릇을 자처한다는 것은 미국에게는 심각한 배신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결국 민주당 정권은 힘없이 비틀거리다가 3년 남짓 만에 몰락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 입증된 것은 일본 국가의 진로 모색에 있어 여전히 미국이 부동의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강 교수의 불안의 근원에 있는 아베 정권의 오늘, 즉 일본 우익의 발호는 미국의 작품이다.

엊그제 미국의 조 바이든 부통령은 우리 한국에도 비슷한 지시 사항을 주고 갔다. 미국 반대쪽에 베팅하지 말라는 주문이 표현은 부드럽지만 사실은 협박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언짢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한 나라의 공직자가 자신의 국가 이익을 위해 발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남이 하라는 대로 할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국가 운명을 중심에 놓고 최선의 베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고민할 내용이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한겨레, 2013.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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