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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환경운동가의 비행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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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2-03 16:47 조회19,9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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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고 독일에 왔다. 며칠 머무르다 돌아간다. 한국과 독일을 왔다 갔다 하며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이 6000㎏ 가까이 된다. 한국인의 일년 평균 배출량이 1만2000㎏ 정도 되니 독일여행 한번에 그 절반을 내놓는 셈이다. 여기 온 목적은 온실가스를 적게 내놓는 건축방식을 좀 배우려는 것인데, 이를 위해 온실가스를 잔뜩 쏟아냈으니 모순일지 모른다.

 

독일의 생태경제를 연구하는 어느 학자는 50살이 넘은 지금까지 한번도 비행기를 탄 적이 없다고 한다. 이유는 비행기 여행이 지구생태계 파괴에 대한 “무책임의 극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5년 전부터 그는 채식도 하고 있다. 당연히 자동차도 없다. 자전거가 그의 주된 이동수단이다. 그렇다고 그가 아주 조용하게 정적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단히 왕성하게 강연활동을 하고, 자기 지역에서도 이런저런 일을 벌이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일년에 100번 정도 강연을 하는데, 들어오는 요청에 다 응하면 수백번이 넘게 강연을 다녀야 한다. 강연 장소까지는 기차와 버스를 타고 간다. 따로 강연료를 요구하지는 않고 이동과 숙식에 들어간 비용만 받는다. 그는 녹색성장이나 녹색뉴딜 같은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런 프로그램도 결국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가져오고 환경을 파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눈에는 지구를 살리기 위한 활동을 한답시고 비행기를 타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나같은 사람도 녹색성장이 지구를 살리고 좋은 삶도 가져다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위선적으로 보일 것이다. 기후변화를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는 적정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700㎏인데, 한번의 비행으로 그 두배를 내뿜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번에 만난 건축가와 그의 부인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나이가 70이지만, 이들도 자동차가 없고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제철 음식과 지역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고, 고기는 가능한 한 적게 먹는다.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건축물을 실현하기 위해 활발하게 일을 벌이지만, 비행기는 잘 안 탄다. 그래도 비행기 여행이 ‘무책임의 극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가 즐겨 쓰는 말은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사람은 그 문제의 일부가 아니다”이다. 여기에는 비행기를 가끔 타더라도 그것이 기후변화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는 활동에 불가피하게 필요한 일이라면 탈 수도 있다는 뜻도 담겨 있다.


사실 말과 글을 가지고 환경위기에 대해 우려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은 독일의 그 학자와 같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얼마든지 자기 일을 해나갈 수 있다. 그가 정말 그런 일을 하면서 진정으로 만족을 느끼려면 비행기 타는 것을 거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직접 집을 짓는다는 실제적인 활동을 통해서 환경위기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려는 사람은 비행기를 타야 할 때도 있다. 필요한 건축자재를 먼 곳에서 가지고 와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한다. 그래도 배출량의 대차를 따졌을 때 감소 쪽이 훨씬 많이 나온다면 장거리 이동도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며칠 후면 완공될 세번째 에너지독립 주택에 들어갈 자재는 대부분 바다를 건너 왔다. 목재는 북미대륙, 단열재의 원료는 중동에서 들여온 것이다. 창과 환기장치, 스테인리스 나사못 같은 것들은 유럽에서 생산되었다. 보통집에 비해 짓는 데 에너지가 더 많이 들어간 셈이다. 그렇지만 이 집이 50년 사용되는 동안 보통집보다 에너지를 훨씬 적게 쓰게 된다면, 먼 곳에서 재료를 들여오는 것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비행기 여행이 “무책임의 극치”라고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만큼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런 결론에 도달할 때의 출발점은 비행기 여행이 원칙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이어야 한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4.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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