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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식]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7]최원식 인하대 교수가 본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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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2-03 17:03 조회20,3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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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는 2013년 연중기획 '이름600·개항130 인천을 본다'를 마무리하기에 앞서 최원식(64) 인하대 인문학부 교수를 지난 9일 오후 4시 대학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 토박이'로 30여년간 인하대에서 후학을 양성해 왔다.


인천 문화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 교수는 인천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는 인천을 '기회의 땅'으로 보고, 개항기 때 꽃을 핀 '개방성'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을 '서민도시'로 규정했다. 각지에서 몰려온 서민층이 이 도시에서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인천'은 어떤 도시인가요.

"인천은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잘 안 돼요.

(인구 규모로)지금 3대 도시인데, 곧 2대 도시가 된다면서요.

인천은 탈냉전시대를 맞으며 중국 교역을 뚫어서 양적으로 위상이 확대됐다고 할까, 기회가 왔잖아요.

덩치도 커지고 좋은 조건을 가졌는데, 그것을 활용해서 양적인 성장을 질적으로 전환시키는 무엇인가가 한편으로는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문턱'을 싹 넘어가지를 못해 참 안타까워요."

    

-인천이 잘 안 되는 건 무엇 때문인가요.

"인천시민들이 지금 우리에게 온 기회를 감당하고 이것을 더 앞으로 전진시킬 만한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는 느낌이 듭니다. 큰 비전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방어적으로 있지 않나 싶어요.

괜히 '토박이 논쟁'이나 벌이고. 근대도시는 토박이가 아니라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 새롭게 만드는 것이에요. 개항 이후 인천은 근대도시의 실험실 노릇을 했어요.

일제의 압박 아래서도 뭔가 우리 것을 만들어 내고 정계·학계 등 각 분야에서 엄청난 인물들을 냈어요.

이 도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노동자의 도시였어요.

전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인천에 와서, 정당하게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살 수 있다는 그게 있었거든요.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 능력과 노력 여하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게 옛날 인천에 있었던 것 같아. 신소설에도 보면, 몰락한 양반들과 백정들도 (인천에)많이 왔고, 신분 세탁이 가능하거든. 일종의 '인천 드림'이랄까, 그게 가능했지.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게 안 되기 시작했어요."


-인천은 개항장 때 활력있는 도시였다가, 분단 이후 서울의 배후도시로 머물렀어요. 서울에 다 빼앗겼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일제 때는 서울 옆에 있는 게 나쁘지 않았어요.

항구로 사방이 통했으니까. 인천이 자기 중심을 갖고 네트워킹을 하면서, 서울 덕을 많이 봤지요.

서울과 가깝다는 게 물론 나쁜 점이 분명히 있죠. 5·16 이후 활력이 급격하게 떨어졌던 것 같아요.

항구가 항구 역할을 못했죠. 중국과 이북 모두 막히고. 중요한 기업은 다 경부선 라인으로 몰려가고.

이런 얘기도 있었어요. 5·16 이후 장면 총리 등 인천의 대정치가들이 다 몰락하니까, 후원자들이 함께 무너졌어요.

한 예로 임창복(林昌福)씨는 이승만 시대에 중국 상하이, 홍콩을 무대로 이북과 중계무역을 하신 분이에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이 분에게 북한과 무역할 수 있는 딱지를 주셨대요. 이분 아들이 임영방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방 인하대 교수예요. 임창복씨는 인천 부자였어요.

황해를 건너다니며 네트워크를 활용해 경제적 부를 쌓았죠. 부가 축적되면 자연스레 문화도 융성해요. 그런데 장면 총리가 몰락하면서 5·16 때 고문을 당하시고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죠. 그런 집안이 많대요."


-인천은 '문화의 불모지'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말은 인천을 너무 낮추고, 문화를 너무 좁게 보는 시각에서 나온 것 같아요. 넓게 보면 문화는 삶의 방식이에요. 삶의 질 자체가 골고루 높아져야 고급 문화가 꽃피우거든요.

밑이 튼튼해야 해요. 서민 문화가 활기차야 뭔가 살맛 나는 세상이 돼요.

일제 때 보면 문학 쪽에서 인천에 중요한 인물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1960년대 이후 문학에 걸출한 인물이 잘 안 보여요. 부산 하면 영화제도 생각나고 여러 가지 있는데, 인천은 없어요."


-문화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문화도시 인천의 방향성은 어떻게 보시나요.

"인천에서 살면 더 좋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는 비전을 만들고, 함께 노력해야 해요.

인천문화재단이 할 일이 바로 그런 것이에요. 강요된 공부만 시키니 학생들이 괴로운 거예요.

체육, 예술, 독서 활동을 하면서 자기를 살찌우는 거예요. 얼마 전 저희 집 바로 옆의 율목도서관에서 '길 위의 인문학' 강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열심히 듣는 거예요.

인천의 문화적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여기에 불을 붙여야 해요."


-인천의 정체성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 그 말을 싫어하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속 좁은 향토주의자가 되거든.

'옛날엔 좋았는데 마치 외지인 때문에 망했다'는 과거 지향적인 말이에요.

그렇다고 정체성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도 위험해요. 또 인천의 정체성을 잡종성으로 보는 건 '아무렇게나 살자'는 것 같아 문제가 되죠.

떠돌이가 들어와서 도시를 분해하면 망하는 도시가 되죠. 저는 정체성이란 말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던지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정체성은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에요.

인천이라는 도시가 좋아질 때는 '서민에게도 약속이 가능한 도시'였어요. 토박이, 외지인, 부자, 빈민 따지지 않고 이 도시에 와서 자기의 꿈과 노력으로 도시를 일궜어요.

그것을 회복해야 해요. 개방적인 사람들이 바깥에서 인천에 와서 뭔가 새로운 도시, 살 만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해요. 도시를 구축하는 핵, 에너지가 생겨야 하는 거죠."

    

-그럼 인천시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처음에 인하대에 왔을 때 보니 교수의 5분의 4가 서울에서 출퇴근을 했어요.

'몸은 인천에 있고 영혼은 경인고속도로를 오간다'며 동료 교수들을 비판하는 글을 대학신문에 쓴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요. 당시에 제가 좁게 생각한 것 같아요.

단, 인천에 살 때는 시민으로서 인천을 좋은 도시로 만드는 일에 몫을 나누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언젠가 이곳을 떠날 수도 있지만, 최소한 인천에 살 때는 인천을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로 만드는 시민적 책임 의식을 갖자는 거죠.

인천이 살 곳이라 생각하면 여기서 사람들도 만나고, 불편하거나 부당한 건 고치자는 의견을 갖게 되겠죠.

그렇지만 곧 떠날 곳이라고 생각하면 인천은 여론의 무풍지대가 돼요."


-인천은 '짠물', '공부 못하는 도시', '공기 나쁘고 집값 싼 도시'라는 인식이 아직도 있어요.

"옛날엔 짠물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또 아니야. 짠물이라는 게 잘났다는 뜻도 되거든(웃음). 신생 도시로 활기있는 게 더 좋은 거예요. 완숙한 도시는 내리막만 남았겠죠.
인천은 오랜 도시 같으면서도 신생 도시니까, 그 활기를 잘 이끌어내서 상승 기류를 타는 게 중요해요.
이런 욕구는 시민들 사이에 자욱해요. 지금 지도층이 그것을 끌어서 조직하면 돼요."


-인천에서 송도국제도시만 잘나가는 것 같아요. 이미지상으론 송도 역할이 크지만, 구도심과의 생활 수준 격차 등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해요.


"중국이 처음 개혁 개방할 때 선부론(先富論)을 내세웠어요.
해양지역이 먼저 부자가 돼 중국 전체를 끌어올리자는 거예요. 그런데 선부론을 하다보니 격차가 벌어졌어요.
지금은 고루 잘 살자는 균부론(均富論)이 우세하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송도, 송도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인천은 기본적으로 노동자 도시, 서민도시예요. 딱 갈라져 있지 않은 균형사회였어요."


인터뷰를 마칠 때 최원식 교수는 꼭 이 말을 적어 달라며, 수첩에 적힌 탄허 스님의 말을 인용했다.


"한 나라와도 바꿀 수 없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총력을 쏟아라." 최 교수는 "사람을 길러내는 데 진짜 힘을 합쳐야 한다. 자연스레 인천은 젊어질 것이고, 그 젊음이 인천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인일보, 201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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