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경] 사실이 설마가 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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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4-11 15:03 조회21,90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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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는 안 하던 페이스북을 하게 된 때문인가, 올해는 유독 다양한 만우절 농담을 접한 것 같다. 갑자기 결혼한다는 소식에 설마 하면서도 다투어 덕담을 던지게 만든 정도야 말을 던진 당사자가 뜻밖의 인물이 아니었다면 넘어가지 않았을 진부한 농담에 가깝다. 그러나 어느 대학 당국이 직접 해리 포터 영화에 나오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와 결연을 맺었다는 글을 게시하여 나름 열렬한 호응을 받은 일이나, 모 기업의 회장이 장난으로 홍보실을 놀라게 했다는 만우절 문자 소동이 화면 저장되어 다시 신문 기사로 올라와 눈길을 모은 일 등은 우리가 만우절 역시 얼마나 치밀하게 기획하고 활용하는 부지런한 사회를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만우절임을 깜빡하고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한 다리 건너면 알 만한 사람이 구속되었다는 게시 글에서였다.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니 구속되었다는 사연 자체가 농담임이 분명한 내용이었지만, 요즘 세상에 뭐 말이 안 되는 일이 한두 가지라야 말인가. 뭐 이따위 농담을 해서 사람을 놀라게 하나 싶었지만, 말이 안 되는 상황과 말 되는 상황을 판단할 상식을 무너뜨려 온 것은 시절 탓이 크다. 200만원의 시위 벌금 때문에 수배된 장애인운동단체 대표는 하루 5만원씩 40일을 일해야 할 것이라고 하고, 노조활동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으로 쌍용차 해고 조합원들이 부담해야 할 47억원을 위해서 시민 2만명은 한 달 걸려 ‘겨우’ 10억을 모으는 ‘기적’을 이루었다. 그런데 어느 기업 회장이 하루 노역으로 5억씩 닷새에 25억을 탕감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면, 사실 이쪽이 기적이라면 더 기적 같기도 하고, 농담이라면 더 농담 같기도 하지 않은가 말이다.
한편 김연아 선수의 열애설을 보도해서 유명해진 모 매체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져스 2> 촬영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보도를 냈다. 2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한다면서 서울 시내 곳곳을 막고 촬영을 하는 이 영화가 실제로는 한국에서 촬영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진주에 떨어진 운석 무리 중 어떤 물질 하나가 마포대교와 세빛둥둥섬 인근에 떨어졌는데 영화 촬영은 이를 수색해서 인양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만우절 농담이라는 확인을 하고 나서도 잠시 혼란스러웠던 것은 기사에 나오는 설명이 정부 발표보다 차라리 논리적이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같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해도 될, 세계 어느 대도시에서 찍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장면을 굳이 한국에서 찍겠다는 것은 이런 숨겨진 목적 때문이라고 기사는 주장한다. 솔직히 무슨 대단한 명작 영화도 아닌 것 같은데 초등학생 등하굣길에 수업까지 지장을 주면서 군사작전 펴듯 난리를 치면서도 시민에게 양해를 구한 적도 협의 한번 없었던 것도, 안보를 위한 한-미 공조였다니 갑자기 모두 이해가 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게 보면 <어벤져스 2> 촬영에 관한 농담은 사실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의 납득하기 어려움에 대해 어떤 진실을 담고 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논리를 필두로 원격의료나 원자력발전소 건설 등 사회적 갈등을 무릅쓰고 밀어붙이는 많은 사업들이 큰 이익을 가져오리라는 정부의 발표는 믿기 어렵고, 사회의 특권층이 누리는 특별대우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지경이 되어 믿기 어려워야 마땅할 일도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현실보다 농담이 더 사실 같은 것 자체야 사실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한 사회 전체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믿기지도 않는 대박의 꿈을 쫓거나, 받아들여서는 안 될 부당한 것들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백영경 방송통신대 교수·문화인류학
(한겨레, 201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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