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욱] 아프니까’ 정치에 관심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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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1-10 14:18 조회20,1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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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원생들과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젊은 시절에 들었던 어느 사랑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자가 사랑에 빠진 것은 그녀가 시쳇말로 꾀나 잘 나가던 때였다. 상대 남자는 그녀에 비해 사회적으론 매우 초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변변한 직장도 없이 음악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 남자의 순수성에 폭 빠졌다고 한다. 부모님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그 둘의 사귐을 대놓고 반대하거나 크게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에 그녀는 자유로운 사랑을 위하여 남자와 단둘이 어느 소도시의 단칸방으로 숨어버렸다. 거기서 그녀는 그야말로 천국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가 관찰해보니, “문틈으로 가난이 스며들어오자 사랑이 그 틈으로 빠져나가”더란다.
요즘 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경험 없이도 그들은 가난이 사랑을 내몬다는 것을 지나치리만큼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선택은 냉정하다. 부자가 될 수 없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길고 끈적끈적한 사랑보다는 짧고 깔끔한 즐김(?)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포세대’의 출현은 결국 가난의 문제인 것이다. 가난에 대한 불안으로 청춘 남녀들이 사랑을 거부하며 살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 와중에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란 걸 추진할 것이며, 그 기간 내에 한국 경제는 크게 성장하여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1960년대식’ 공언을 해대고 있다. 3포세대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얘기일 뿐이다. 지금은 국가경제가 덜 성장해서 혹은 국부가 부족해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랑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있다는 말인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거니와, 문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와 복지 정책의 후진성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2012년 현재 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최하위에 속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사회지출 비중이 한국의 세배 이상(27.9~32.5%) 큰 스웨덴, 덴마크, 오스트리아, 핀란드, 프랑스 등 선진 복지국가들의 경우는 말 할 것도 없고, OECD 회원국들의 평균(21.8%)에도 한참 못 미치는 저급한 복지 및 사회안전망 수준에서 불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만달러 시대에 머물러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예컨대, 독일과 프랑스의 사회지출 비중은 2만달러 시기이던 1990년 각각 21.7%와 24.9%였다. 그리고 사실 다수의 OECD 국가들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는 무렵 이미 그들의 사회지출 수준을 20%대로 올려놨다. 젊은이들을 불안케 하는 것은 나라에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책이, 즉 정치가 한심해서일 뿐이란 것이다.
다행히 최근 우리 청년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운동에서 청년학생들은 “이 추운 겨울 가스비가 무서워 학생회 실에서 잠을 자는 것이 오늘 대학생들의 모습이다. 이게 과연 우리들의 잘못인가”, “실패한 개개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에 분노가 인다. 실질적인 대안으로 이어질 수 있게 노력하자”, “(대학생들이)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정치는 정치인만 할 수 있는 것이냐” 등의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한동안 모든 것을 자기책임으로만 돌리던, 그래서 고작해야 자기힐링에만 관심 갖던 청년들이 이제 정치를 통한 사회 구조 개혁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지금 생각이 옳다. 정치가 해법이다.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적 약함은 오직 정치적 강함에 의해서만 보충될 수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겐 정치적 길항력을 갖추는 것 외에는 강자에 맞설 다른 방법이 없다. 정치적 방식으로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와 타협이 이루어지며 양보와 합의에 의한 사회 구조 개혁이 가능해진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의 정치참여는 정당을 통해 이루어진다. 청년들이 자기 정당을 갖기 바란다.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다면 새로 만들거나 기존 것을 고쳐서라도 가져야 한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경향신문, 201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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