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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무웅] 한 걸음 더 들어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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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3-03 14:24 조회19,4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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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집에 있을 때면 놓치지 않고 꼭 챙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생겼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밤 9시 뉴스다. 그 프로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자 그럼, 한 걸음 더 들어가 볼까요?” 하고 손석희씨가 말을 건넬 때다. 드물지만 어떤 땐 “두 걸음 더 들어가 보겠다”고도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던 젊은 기운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의 안내로 뉴스의 심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세상의 모습은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고 여겨진다. 매일 저녁 뉴스 텍스트에 대한 비평적 독해 연습을 하는 셈이랄까. 손석희씨의 진행이 더 돋보이는 건 피상적 내지 편파적 보도에 질려 꽤 오래 뉴스 프로그램을 끄고 지내다시피 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히 불만스러운 점도 적지 않다. 우선 그에게 배당된 45분의 시간은 하루 뉴스를 소화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는 느낌이다. 그 결과 대충 건드리기만 하고 지나가는 것도 많고, 특히 외신의 경우엔 빠지는 뉴스가 너무 많다. 보도 진행을 배후에서 돕는 제작진과 화면에 등장해 사건을 전하는 앵커나 리포터들 간의 팀워크가 필수적일 텐데, 그런 팀워크에서 체계적으로 형성된 신뢰성보다 손석희 개인의 감각에 의존한 순발력이 프로를 끌고 간다. 긴급한 사건의 경우 심층적 분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지만, 여러 날에 걸쳐 사건의 경과를 따라가는 보도의 경우에는 마땅히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사건과 연관된 다양한 맥락이 짚어지고 숨겨진 의미가 부각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면이 아직은 미흡하다.

예를 들어보자.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가 지난달 27일 북측 방송의 기자회견을 통해 남쪽에 공개된 선교사 김정욱씨 사건은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사건의 경우처럼 가끔 보던 사건이 또 일어났구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신문도 방송도 단순한 사실 보도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두 걸음만 안으로 더 들어가면 우리 시대의 핵심적 문제를 건드릴 뉴스의 광맥에 닿아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내 생각에 그 사건은 최소한 세 개의 광맥에 연결되어 있다.

첫째 한국 기독교(개신교)의 선교 방식에 관련된 문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소리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여전히 전철역 입구나 뒷산 산책길에서 그와 비슷한 접근 공세에 마주친다. 우리나라는 종교 자유가 보장된 다원적 사회이므로 그런 선교 방식을 찬성할 수는 없어도 용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이슬람국가에서라면 그런 선교는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은 이슬람국가보다 더 철저하게 이른바 백두혈통의 신성성과 유일성이 강조되는 사회이므로 남쪽에서 생각하는 ‘순수한 종교 활동’이 거기서는 나라의 기반을 흔드는 ‘반국가적 범죄’로 취급될 수 있다. 밀입국 선교사도 그 점을 몰랐을 리 없다.

둘째 국가정보원과의 관련성이다. 기자회견에 나온 김씨는 국정원 직원을 만나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고 국정원 관계자는 그런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므로 일반인들로서는 실체적 진실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근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국정원이 정도를 벗어난 짓으로 곳곳에 섣부른 흔적을 남겨놓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생각건대 한 나라의 정보기관은 높은 도덕성과 최고의 판단력을 갖춘 정예 두뇌집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국정원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앓고 있는 어린이처럼 종잡기 어려운데다 부당한 자기 과시에 힘을 낭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서울시 행정공무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조직의 수장으로 올라와도 그것이 수치임을 깨닫지 못한다. 이래서는 국정원에 미래가 없다. 전문가 조직으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남북관계의 작은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기자회견의 형식을 통해 보내진 신호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읽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끝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시작되는 시점을 택했다는 것이 우연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당사자에게, 누구보다 우리 국민에게 용기와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한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한겨레, 2014.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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