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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검은 리본 - 심장에 깃든 `사람 인(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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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4-25 16:37 조회22,5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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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리본 유례를 정확히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어디에서나 죽은 자를 향해 산 자가 고개 숙이는 의식은 있으며, 오늘날 검은 리본은 그 시간에 동참하는 산 자들의 정서적 마스크를 대변하는 사물이다.

검은 리본을 단 이는 `침묵`이 아니라 `묵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침묵은 외적 상황에 대한 수동적 태도와 관련된다. 반면 `묵상`은 고통과 슬픔의 상황에 대한 내적 성찰이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죽음, 때로는 죽음을 둘러싼 어처구니없는 세계의 폭력성에 대한 근원적이며 능동적인 반성이다.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산 자들은 죽은 자들 세계에 참여한다. 온갖 말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산 자들 세계이기 때문이다.


묵상은 죽은 자들 곁에 있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애도는 더 이상 산 사람들의 관념과 논리와 허위로 만들어진 말들을 발설하지 않고 따지지 않으며, 제 안에 삼키는 데서 시작한다.


리본은 왼쪽 가슴에 단다. 심장(心臟)이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심장은 마음 심(心) 자를 쓴다. `삶-죽음`을 뜻하는 중요한 신체적 상징이기도 하다. 다양한 의미와 색깔의 리본 중에서도 그래서 `검은 리본`은 가장 의미심장하다.


리본은 삼각형 모양으로 양쪽 가운데 안쪽으로 비스듬히 잘려 있다. 한자 문화권 사람에게 그것은 `사람 인(人)` 자로 보인다. 검은 리본은 죽은 사람 형상을 하고 있다.


검은 리본은 검은 나비 형상이기도 하다. 검은 나비에는 영혼의 부활과 삶의 재생을 기도하는 이미지가 깃들어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노란 리본이 퍼지고 있지만, 이 소망은 리본 형상 자체에 이미 깃든 기도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노란 리본이냐, 검은 리본이냐가 아니라 리본이 심장에 달려 있는 뜻을 깊이 묵상하는 일이다. 한 시인의 언어를 빌리자면, 죽은 자를 마주할 때는 산 자의 사회적 `얼굴을 벗`고, 허위의 말을 스스로 삼키며, `심장을 꺼내 놓`아야만 한다. 오직 `사람(人)`으로만 만나야 한다.


함돈균 문학평론가
(매일경제, 201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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