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최인호 선생의 마지막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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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1-01 15:23 조회21,4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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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야외에 나가 점심을 먹고, 나온 김에 행주산성 근처의 산에 올라 가을볕을 쬐었다. 그 친구와 함께 산에 올라 산 밑 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을볕에는 변하지 않는 그리움이나 믿음 같은 것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오랫동안 시를 놓고 있다가 몇 년 새 정말 열심히 다시 시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친구가 다시 시를 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출판사에 다니는 그는 출판 관계로 최인호 선생을 지근에서 모시고 있었다.
어느 날 최인호 선생이 그 친구가 시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쓰는 것이라며 다시 시를 쓰라고 권유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최인호 선생에 대해 조금씩 말을 꺼내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친구에게 최인호 선생은 문학 자체이고 문학적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 친구는 최인호 선생이 돌아가시자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 돌아가셨다고 최인호 선생의 장례미사에 참석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최인호 선생의 장례미사에서 슬픔 중에서도 바쁘게 안내일을 맡고 있던 그 친구로부터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최인호 선생의 마지막 글이자 시였다. 돌아가시기 직전인 9월10일 7시15분 사모님이 받아썼다는 최인호 선생의 문학적 유언 같은 마지막 글이었다. “먼지가 일어난다/살아난다//당신은 나의 먼지//먼지가 일어난다/살아야겠다//나는 생명 출렁인다.” 그 글에는 한 작가가 한시도 쉬지 않고, 그리고 말년에는 암투병에 시달리면서도 글의 끈을 놓지 않으며 부활을 노래하는 진실과 생명이 담겨 있었다. 그 글을 읽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한번도 최인호 선생을 직접 뵌 적이 없지만 친구를 통해, 그리고 문학청년기부터 읽었던 최인호 선생의 소설을 통해 선생의 음성을 옆에서 듣고 있는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선생은 원고지에 소설을 쓰다가 삶을 마치고 싶다고 했단다. 선생은 ‘몽유도원도’라는 소설에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도미의 부인인 아랑부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핏빛같이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그려낸 적이 있다. 선생은 그 소설을 통해 “믿음이 굳지 않으면 큰 사랑이 없으며 죽음을 뛰어넘는 정절이 없이는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법이다. 세월이 흘러가서 말대(末代)의 세월이 온다고 하여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선생의 장례미사에서, 그리고 친구가 보내온 한 통의 문자에서 그런 아랑부인의 불멸의 사랑이 선생에게는 소설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불행이나 고통은 바로 우리들 문 밖에 가까이 있지만, 그래도 자신은 그 쐐기풀 같은 고통을 뽑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인호 선생의 마지막 유언 같은 문장의 “당신은 나의 먼지”라는 말에서도 나는 작가의 진정성을 엿본다. 최인호 선생에게 당신은 신일 수 있지만 소설 그 자체일 것이다. 아니, 소설이 신 자체일 것이다. 문학은 고통 속에서 솟아나는 먼지이다. 그 먼지는 뚜렷한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세상의 이치로 보면 보잘 것 없고 헛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성을 존중하는 위엄을 지켜내기 위해 삶의 구체성과 세계의 숨은 진상을 드러내는 각고의 장인정신의 산물이다.
20여년 넘게 우정을 이어오고, 그리고 최근에 들어 다시 열심히 시를 쓰는 친구와 함께 산에 올라 가을볕 속에서 우리는 최인호 선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빛’이라는 말이 한 사람의 영광을 대변하고 있다면 ‘볕’이라는 말에서는 그 사람의 생에서 은은하게 배어나는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그 가을볕 속에서 친구와 나는 최인호 선생을 통해 우리가 써야 할 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까 가만가만 서로의 가슴을 만져보며 그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박형준 시인
(한국경제, 201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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