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렬] 민주주의 집어삼킬 괴물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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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3-12-02 13:08 조회18,91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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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은 큰 것을 좋아한다. 권력을 과시하고 유지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영악한 권력자들은 크면서도 복잡한 것을 더 좋아한다. 권력을 유지하는 데는 이보다 더 유용한 게 없기 때문이다. 현대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 권력자들의 큰 것에 대한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그들이 권력을 과시할 수 있는 통로는 건축물이나 토목공사에 한정되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 폭은 크게 넓어졌다. 현대 기술이 복잡성을 더해주었기 때문이다. 복잡하면서도 큰 것 중에서 권력자들이 가장 선호할 만한 것은 원자력발전소다. 이것은 거대할 뿐만 아니라 아주 복잡하다. 게다가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의 접근은 완전히 차단된다. 권력자들과 그 아래 있는 전문가들만 그것을 차지하고 조종할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은 권력을 오래도록 독점하려는 자들에게는 위협이 아니라 축복이다. 보통 사람들이 제어하기 어려운 위험의 존재는 그들의 권력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작은 기술보다 크고 위험한 기술을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통 사람들이 조금만 들여다보면 쉽게 다룰 수 있는 작은 태양광발전기를 사방에 퍼뜨리는 것은 그들의 권력유지에는 조금도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권력을 나누어주는 것이 되어 권력 기반이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들만이 독점할 수 있는 몇개의 원자력발전소에 사람들을 묶어두는 것이 권력을 강화하는 데는 훨씬 좋다.
한국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수십개 존재한다. 권력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큰 위험이 북쪽뿐만 아니라 남쪽 땅 안에도 여기저기 있는 것이다. 북쪽의 위험은 선명하게 보이지만 이 위험은 보일 듯 말 듯 잘 드러나 있지 않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미국, 옛소련, 일본, 영국에서 그랬듯이 이 위험은 언젠가 현실이 되어 사람들을 덮친다. “재난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는 재난이 일어나게 되어있다”는 변형된 머피의 법칙이 이미 여러 곳에서 검증되었는데 한국만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재난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살아있는 나라에서는 권력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독재국가나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국가에서는 재난이 권력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로 고르바초프의 권력이 약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사고 후 총리가 물러났다. 이 사고는 아직도 계속 권력의 위협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에 남아시아나 중동의 권위주의 국가에서 원자력발전소 재난이 일어나면 영악한 권력자는 질서유지라는 구실을 내세워 재난을 권력 강화에 이용할 것이다. 석유가 넘쳐나는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민주국가에서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큰 재난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주변 수십 킬로미터 안은 재난지역으로 선포될 것이고 수백만명이 될지 모르는 거주자들에게는 이주 명령이 떨어질 것이다. 떠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군대가 동원되어 강제 소개가 시행될 것이다. 거주자들 중 일부는 체육관이나 강당에 임시로 수용될 것이고, 이들 수용시설에 들어가지 못했거나 그 시설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전국을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고, 이는 민주주의보다 오직 권력강화에만 눈이 먼 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으로 보일 것이다. 혼란을 일으키지도 않았는데 말 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이 국론을 분열하고 혼란을 야기한다며 용납하지 않겠다고 위협하는 권력자들에게는 꽤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질서유지를 구실로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비상사태 같은 조치들이 선포될 것이고, 권위주의적 통치가 사회 전체를 지배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거대하고 복잡한 기술도 이용하는 사람이 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목적에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원자력발전도 민주시민들의 통제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면 괜찮은 전력공급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민주주의를 강화하면 원자력발전의 위험도 크게 신경쓸 게 없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 기술은 그렇게 만만한 도구로서의 성격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원자력발전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괴물이다. 원자력발전을 해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이필렬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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